• [한겨레 |열린편집위원의 눈] 3년 새 사라진 민주당 대선 공약들

     

    “20대와 21대 대선 공약을 통시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는 보도를 부탁드린다. 특히 민주당의 사회정책 공약 후퇴가 안타깝다.”

     

    지난 5월 말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 나는 20대 대선 당시 거대 양당의 공약발표문 및 연설문 모음집 파일까지 건네며 이렇게 당부했다. 통시적 접근이 필요한 까닭은 두가지다. 불과 3년 만에 치러지는 대선인데다 민주당 후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3년 새 역행한 분야의 공약은 현 시대정신에 맞게 진전시켜야 마땅하나, 실현되지 않은 기존 공약을 없애버리는 퇴보는 경계해야 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현재 공약만을 살피기에 바빴다. 내 당부가 무색하게도 한겨레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도리가 있는가. 직접 한줄 한줄 톺아볼 수밖에.

     

  • [한겨레 사설/칼럼] 이준석 제명부터

     

    언어는 발화자와 수신자에 따라 움직인다. 누가 그 말을 언제 어디에서 왜 했는지를 소거하면 해당 언어의 의미를 왜곡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특히 성폭력처럼 사회적 규범과의 관계에서 계속 의미가 급진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문제일 경우 정확한 언어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역사학자로서 성폭력에서 수치라는 감정을 연구한 조애나 버크는 많은 문화권에서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성폭력을 언급하기보다는 “나의 존엄”처럼 완곡어법을 사용했으며, 가해자들은 잔혹한 가해행위 자체를 구체적으로 떠벌린다면 피해자는 “사악한” 같은 감정적 묘사를 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단어들이 “레이프”(rape)처럼 굳이 영어식 표현의 음가를 그대로 발음하는 것도 간접화법의 사례다.

  • [주간경향 |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나의 열두 번째 대통령

    1980년대 이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계엄 포고문이 여러모로 나를 떨게 했다.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4시간 동안은 두려워서 떨었다. 열 살 먹은 딸이 울고 있는 옆에서 덩달아 울었다. 그땐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입에 재갈을 물고 살거나 재갈을 풀고 죽거나, 나야 물고 사는 편을 선택하겠지만, 나보다 40년 늦게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 서러웠다. 계엄이 해제되고 광장이 열리자 나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홀로 광야에 선 듯한 고립감에 떨었다. 광장에 나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유사한 경험의 축적으로 나는 광장 이후 세상에 일말의 기대도 품지 못하는 비관주의자, 어쩌면 현실주의가 돼 있었다. 응원봉과 K팝, 전에 없던 광장의 미담과 남태령에서 날아든 기적 같은 이야기들로 마음이 녹을 만도 한데, 나만이 서 있는 이 광야에서 그저 먼 나라 소식을 보듯 광장을 관망했다. 4월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읽어 내려간 윤석열 파면 결정문을 들으며 잠시 감동했지만, 광장이 닫히고 대선 공간이 열린 순간 두려움은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