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똑똑한 아기' 낳자고 박사까지 공부한 게 아니라고 (윤정인)
결혼 초기. 명절이었던가, 가족 행사가 있었던가…. 아무튼 정확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시댁 어른들을 만난 날이 있었다. 그날 시부모님이 나를 ‘공부하는 며느리’라고 소개하며, 박사과정 중임을 밝히니 많은 어른들이 내게 공통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태어날 애는 머리가 좋겠네.”
‘응? 뭐지?’ 싶었지만, 어른들에게 그런 감정을 티 내면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굉장히 어색한 웃음으로 넘어갔다. 그 말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건만…. 출산 이후 아이를 키워온 6년째 나를 쫓아다니는 말이 됐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닌 우리 아이를 쫓아다니는 키워드가 됐다.
◇ 엄마가 박사인 거랑 애가 말이 빠른 거랑 무슨 상관이죠?
우리 땡그리는 말이 빨랐다. 말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산후조리를 하던 친정에는 아이 한 명에 그 아이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거는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외삼촌, 이모 1, 이모 2가 있었다. 아침에 나가면서 안녕, 집에 돌아와서 안녕, 밥 먹을 때 안녕….
한 사람당 세 번만 말을 해도 총 여섯 명의 사람들이 말을 걸었으니 아이는 하루에 열 여덟 번의 인사를 받았다. ‘반강제’로 말이 트였다고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그 정도 상황이면 애가 말을 하기 싫어도 입이 트일 수밖에 없다.
의도치 않게 엄마 아빠가 실험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이기에, 실험 흉내를 놀이처럼 하며, 엄마와 아빠가 전공 용어를 사용하며 대화하는 탓에, 아이 치고 묘한 단어도 많이 쓴다. 예를 들면 “타당하지 않다”라거나, “계획이 있냐”라고 우리에게 묻기도 한다. 가끔 아이에게 뭐하냐고 물으면 “실험 중”이라고도 답한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전공 서적을 좋아한다. 특히 생물학 전공 서적을 사랑한다. 이 책은 제목만 생물학이지 일단 표지가 동물이다. 게다가 그 안에는 동물과 곤충 사진도 많다. 특히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곤충 사진이 정말 자세하게도 나와 있다.
그러나, 한글을 아직 모르는 우리 땡그리에게 엄마 아빠의 전공 서적은 실사판 그림책일 뿐이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 역시 그저 우리 아이가 처한 가정의 특수성일 뿐,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있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엄마 아빠가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가 그쪽으로 노출이 많이 될 뿐이다.
그런데도, 아이는 엄마의 학력이 알려질 때마다 사람들의 ‘묘한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요즘 그런 기대 때문에 본인이 ‘천재’인 줄 안다. 심히 피곤하다.
“어유~엄마가 박사라서 그런가, 애가 똑똑하네!”
“애가 말이 빠른 이유가 있네. 엄마가 박사라서 그렇구나~”
“애기 나중에 공부 잘하겠다~엄마가 박사님인데 얼마나 똑소리 나겠어~”
이렇게, 아이가 잘한 것도 아이의 성과로 칭찬받지 못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아이에게 꼬리표처럼 붙는 저 ‘공부’. 아니, 엄마가 박사인 거랑 애 공부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람.
왜 사람들은 엄마 머리와 아이 머리를 ‘세트’로 놓고 생각할까? 내 머리랑 애 머리는 분명히 별개인데. 그리고 공부는 내가 했지, 애가 한 게 아닌데. 이런 소리를 하면 어른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다 엄마 배 속에서 배운단다.”
‘쌔빠지게’ 공부한 건 난데, 애가 도대체 뭘 배웠다는 건지. 내가 공부한 건 내 뇌에 쌓이지, 그 뇌세포가 혈관 타고 움직여서 애 머리로 가나. “뭐야! 이건!”이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달 나므로 이런 말은 입안으로 삼키고 만다.
사람들은 유난히 엄마 머리 닮은 아이에 집착한다. 아빠 머리 닮는다는 생각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빠 머리보단 엄마 머리에 유난히 집착하는 것 같다. 이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한 걸까?
◇ 내 머리와 애 머리가 '세트 메뉴'도 아니고…그만 좀 엮어주라!
나는 여기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성 역할. 돈 버는 아버지, 집안을 보살피는 어머니. ‘집안을 보살핀다’는 역할에는 아이의 돌봄과 교육도 포함돼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구조를 우리는 언론을 통해 가끔 접하기도 한다. 인사청문회 때 자녀 교육은 와이프가 알아서 한 일이므로 잘 모른다는…. 음, 그분들은 정말로, 오래된 성 역할에 충실히 살다 보니 정말로 모르셨던 것은 아닐까(우리 아버지 생각해보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그동안 켜켜이 쌓여왔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아이 교육은 모두 엄마 몫으로 전담됐을 것이고, 하다 하다 이제 태아에 대한 교육열로 번졌을 것이다.
‘아빠표’라고 검색창에 쓰기만 해도 대부분 놀이나 먹는 것이 나오는데, ‘엄마표’라는 검색어에서는 유난히 교육 관련된 키워드가 많이 나온다. 엄마 머리가 좋아야 아이가 똑똑하다는 어르신들의 생각이 사회의 생각으로 고착된 것이다. 검색어만 봐도 이런데, 어떻게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거의 여성 교육은 분명 집안을 이끌어갈 후대 자손을 가르치기 위해 시작됐을 것이다. 성리학 사상이 시대의 바탕이었던 조선시대에는 분명 그랬다고 우리는 배웠다. 조선시대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가 쓴 ‘내훈’을 읽어 봤는가. 고구마 백 개 한 번에 먹은 기분이다.
그런데 그건 조선이고, 지금은 대한민국이다. 시대가 변했다.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 의무교육의 대상이 되고, 높은 교육열로 유난히 고학력자가 많다는, 지금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왜 아이 교육은 엄마만의 몫인가. 엄마 아빠가 유전자를 반씩 내려보냈으면 애 공부 머리도 반반 닮거나, 혹은 ‘랜덤’으로 물려받는 것이겠지, 왜 그게 엄마 몫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냔 말이다.
나는 이런 시선이 너무 불편하다. 그리고 이런 시선이 우리 아이에게 쏟아지는 것도 불편하다.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다. 공부를 '박 터지게' 한 건, 나다. 우리 애가 아니다. 공부는 호르몬을 타고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지식이 혈관과 탯줄을 타고 아이에게 전달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이 개인의 역량이 유전자 탓이 되는 이 상황이 묘하게 죄스럽다. 아이에게 잘못된 꼬리표를 선물한 느낌이 든다.
부모를 걸고넘어지는 칭찬은 아이들에게 큰 벽이 될 수 있다. 잘난 부모를 두고 사는 일은 참 피곤한 일이다. 잘해야 본전인데 못하면 최악이 된다. 이런 시선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아이와 부모는 ‘세트 메뉴’가 아니기 때문이다. 별개의 존재이자, 개별의 인격체인데 이 둘이 영향을 서로 주고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같은 행보를 보일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면 복제를 하는 게 맞지 않나.
모두가 잊고 사는 제일 중요한 사실. 우리는 부모가 되려고 지금껏 살아온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은 엄마 혹은 아빠가 되기 위해 존재한 게 아니다. 엄마는 이래야 하고 아빠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은 부모이기 이전에 개인으로 살아온 우리의 삶을 자꾸 옭아매는 느낌을 준다.
나는 똑똑한 아이를 후대에 남기려고 공부한 게 아니다. “엄마 아빠가 과학자라 애가 똑똑한가 봐요”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무례한 얘기다(게다가 아이 머리에 대한 것은 내가 모르는 영역이므로 동의할 수가 없다). 우리가 과학자가 된 것은 후대에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부모가 되겠다고 선택한 것은 역량과는 관계가 없다. 정말이지, 내 학벌과 아이 머리, 그만 엮이고 싶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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