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행동 성명>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다시! 5월 17일 우리는 강남역에 모였다!
다시! 5월 17일 우리는 강남역에 모였다!
9년 전 5월 17일, 강남역에서 한 여성을 잃었던 날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범인이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라고 말했을 때, 이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버스에서 성추행하던 사람, 안 만나준다고 눈을 부라리며 손을 들고 달려들던 순간, 성희롱을 해 놓고는 사실을 밝히면 너만 손해라던 협박, 살아오며 무수히 겪었던 폭력들에 나는 살아남았고, 너는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강남역이었다.
그 이후 우리에게 5월 17일은 언론과 정치가 나서서 여성혐오 범죄를 부정하던 날이며, 추모가 모욕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며, 그럼에도 우리가 모여서 애도와 분노를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 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날이며, 우리가 차별받는 집단이자 서로의 용기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집단임을 깨달은 날이다.
지금! 9년의 투쟁을 담아 강남역 거리에 섰다!
9년 동안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은 강남역을 떠날 수 없었다. 인하대, 신당역, 신림의 등산로, 강서구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부산, 진주 편의점 등 추모하고 기억해야 할 공간은 늘어났고, 우리는 거리를 떠날 수 없었다.
강남역으로부터 9년 동안,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은 투쟁으로 길을 만들어 왔다.
세상이 외면하는 죽음들에 이름을 붙였고, 일상의 폭력들에 맞서 여성폭력의 심각한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는 동안 대한민국에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던 대통령이 있었고, 여성폭력이 사회구조적 차별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던 대통령도 있었다. 여성들의 밤길 공포를 피해망상이라 주장하며 혐오와 차별로 이득을 챙긴 정치가 있었고 여성의 지지로 힘을 얻은 정치와 여성을 지우고 부정하며 표를 얻는 정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끝내 포기하지 않은 우리의 끈질긴 투쟁이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통령을 두 번이나 끌어내렸으며, 투쟁의 거리가 빛의 광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싸워온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이 끝내는 안티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끌어내려 조기 대선을 만들었으며, 지난 9년 동안 강남역을 잊지 않고 이어온 투쟁이 다시 쓰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절박하게 강남역에 모였다!
작년 8주기 추모공동행동의 슬로건은 ‘퇴행의 시대, 지금 우리가 반격의 시작이 될 것이다’였다. 2024년 5월 17일에 윤석열의 몰락과 조기 대선을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을 향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었고, 대다수의 정치세력은 우리 옆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우리가 폭력 앞에 고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우리의 손을 놓았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감히 선언했다. 우리의 투쟁이 세상을 바꾸고 안티페미니즘 권력을 끝장낼 반격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우리가 믿었던 것은 우리였다. 참정권도. 교육의 권리도, 이동의 권리도, 노동의 대가를 받는 일조차 투쟁을 통해서만 얻어왔으며, 매번 차별 혐오 세력과 싸워 이겨온 우리를 믿었다. 윤석열의 퇴행에 반격을 선언하고 끝내는 승리를 이루어낸 것처럼, 역사 속에서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했을 때 쟁취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일 뿐이다.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대선을 앞둔 지금, 시민들의 광장으로 만든 대선이지만 또다시 우리의 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보수정당이 되면 퇴행을 맞이하고 반대의 경우는 침묵이 우려되는 초라한 선택이 강요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계속 죽음과 폭력 위에 서 있다.
우리는! 강남역에서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절박하게 강남역에 섰다. 아직도 지켜야 할 사람들과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광장이 열리면 여성으로 칭송받다가 끝나면 지워지는 일을 더 이상 견딜 수도, 용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가 강해지는 방법은 단 하나, 더욱 단단해지고 넓어지는 것뿐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현실로 만들 것이다. 우리의 투쟁으로 만든 것만이 우리의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며, 언제나처럼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며 스스로 길을 만들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 눕고, ‘여성폭력을 책임질 대통령에게 투표할’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대선이 끝이 아니며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은 계산된 표를 넘어서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우리가 되었던 강남역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잊지 않고 분노를 힘으로 만든 역사를 이어받아, 지금보다 더 강한 우리가 되어, 단 한명의 여성도 잃지 않는 세계를 위해, 투쟁하고 승리를 만들 것이다.
2025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행동 참가자 일동
- 1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