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성공해야만 하는 늘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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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늘봄학교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월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년 늘봄학교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겪어봐야 아는 분야를 꼽는다면, 아마도 ‘자녀 양육’이 상당한 순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24시간 돌봐야 하는 새로운 생명 앞에서 양육자들은 예기치 못한 일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렇게 새로 알게 되는 것 중에 보육 환경도 있다.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보육시설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은 언감생심이다. 직접 양육하며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주변에 불편을 준다는 냉랭한 시선뿐 아니라 아예 아이가 들어올 수 없다는 노키즈존을 적지 않게 마주한다. 웬만한 곳에선 아이 기저귀를 갈기 위한 공간조차 찾기 쉽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중노동이 된다. 나열하면 끝도 없다. 그렇게 영유아 시기가 지나면 한시름 덜었을까. 육아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진짜 폭풍은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몰아친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오전 이후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이른바 ‘초등 돌봄절벽’이 본격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만가지 저출생 대책? 실질적인 보육 대책부터

 

이미 골든타임을 지나도 한참 지났지만, 최근 들어 저출생 담론이 더욱 뜨거워졌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합계출산율 수치인 0.78(2022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만가지 정책이 시행됐고, 최근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새로운 정책을 더 얹고 있다. 물론 각각의 정책이 의미가 있겠으나,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바뀌지 않는데도 무언가 하는 척만 요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저출생 대응이든, 양육자 경력 단절 방지든, 어떤 이유든 간에 양육자가 사회인으로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돌봄 독박의 문제는 여전한데 1만 가지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아니면 획기적인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과 돌봄의 병행이 가능한 사회가 돼야 하겠으나, 그건 보육 정책의 확대보다 더 요원한 일로 보인다. 두 가지 모두 신경 써야 하지만, 정부가 직접적인 재정 투입으로 당장 확충할 수 있는 분야는 보육이다. 하지만 이 연재에서 여러 차례 다뤘듯, 대대적인 투자로 보육의 양과 질을 대폭 확충했어야 할 시기에 보육 예산을 줄이려다 두 차례 보육 대란이 발생했다(정책과 딜레마 20. ‘보육 문제와 정책의 시간차’). 수혈을 받아야 할 시기에 헌혈을 강요당했으니,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보육 문제의 해법은 사실 간단하다. 그동안 모든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국공립 보육시설을 대거 확충하고, 초등 돌봄정책을 펴면 되는 일이다. 다른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공립 보육시설을 꽤 늘린 문재인 정부는 이 비중을 40%로 공약했으나, 실제론 22.7%를 달성하는 데 그쳤다. 이 역시 국공립 시설을 늘린 영향보다는 아이의 숫자가 줄어든 탓이 컸다. 초등돌봄의 문제 역시 그나마 제대로 다루기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온종일 돌봄’이란 정책을 통해 방과후교실과 돌봄교실을 확대했으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 결과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여야는 공통으로 초등돌봄의 확대를 공약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약집에서 “모든 초등학교는 오후 5시까지 방과후학교 운영, 희망하는 초등학생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희망하는 초등학생은 누구나 초등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초등학교에 저녁 8시까지 운영하는 초등돌봄교실 설치”를 공약했다. 민주당은 “국제적 추세에 맞춰 초등학교 전 학년 동시 오후 3시 하교”를 내세웠고, 방과후학교와 초등돌봄교실을 확대해 “오후 7시까지 운영시간 연장”을 공약했다. 초등 돌봄절벽의 문제가 제기된 지 이미 오래됐으니, 정치권도 문제는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지자체와 학교 간 실랑이로 학원 떠도는 아이들

 

문제는 실행이다. 추상적 선언 수준의 공약이 구체적인 정책이 돼 현실에서 집행되기까지 상당한 준비와 과정을 요한다. 관건은 이해관계의 조정이다.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도 민간 어린이집과 민간 유치원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사안이었다. 초등 돌봄정책도 정부와 학교, 학부모 사이의 이해가 엇갈린다. 교사 단체들은 학교 내 돌봄을 확대하는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학교는 보육기관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반대해왔다. 정부는 그동안 이해관계를 적극 조정하지 않고, 공약대로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과연 다를 수 있을까.

일단 교육부가 지난 2월 5일 발표한 ‘2024년 늘봄학교 추진방안’의 내용부터 살펴보면 ‘늘봄학교’란 정책은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기존의 방과후과정과 돌봄교실이란 두 가지 프로그램을 통합한 과정이고, 둘째는 희망하는 초등학생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방과후과정은 치열한 추첨 경쟁으로 유명하고, 돌봄교실은 신청 자격이 제한적이고 과소 공급돼왔다. 셋째는 하루 두 시간씩의 기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무료라는 점이다. 기존엔 방과후과정 한 학기 1과목당 10만~15만원의 비용을 내곤 했다. 운 좋게 매일 한 시간씩 방과후과정을 수강한다면 1학기당 최소 5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언론에서 자주 보도되는 ‘늘봄학교’의 특징은 오전 7시부터 밤 8시까지 돌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아이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두는 것이 ‘학대나 다름없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오전 7시부터 밤 8시까지는 늘봄학교의 운영시간일 뿐이다. 대다수의 아이는 그 시간 중에서 선택적으로 늘봄학교를 이용한다. 지금은 오후 12시 30분~오후 2시에 하교하면 그때부터 학원 뺑뺑이가 시작된다. 한국 초등학생들이 받는 사교육은 사실상 민간 시장에 내맡겨진 ‘사적 돌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학교와 학원, 학원과 학원 사이를 오가면서 교통사고의 위험도 크다. 이 위험을 덜기 위해 등하교·등하원 도우미 등의 서비스도 성행한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많은 양육자, 그중에서도 다수의 여성이 ‘경력 단절’을 선택하고, 이는 지표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25~29세 여성 고용률은 70.9%로 OECD 평균(67.7%)보다 3.1%포인트 높지만, 35~39세 여성 고용률은 57.5%로 OECD 평균(68.9%)보다 11.4%포인트 낮다. 그나마 이 수치가 빠르게 개선 중이다. 2023년 기준으로 35~39세 여성 고용률은 64.7%였다. 2013년 54.4%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이들 나이대 여성 중에 자녀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우려가 없는 비혼, 무자녀 여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조 교육청 본부 소속 회원들이 지난 2월 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 전담 인력 충원 없는 늘봄학교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조 교육청 본부 소속 회원들이 지난 2월 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 전담 인력 충원 없는 늘봄학교 추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늘봄학교의 성패는 디테일에서 갈려

 

정부는 3월부터 시작되는 1학기에 2700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 사업을 시행해 2학기엔 6000여개의 전국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올해엔 1학년 학생에게만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내년엔 2학년까지로 확대한다고도 밝혔다. 즉 당장 3월부터 2700개 초등학교의 1학년 학생들은 추첨에 당첨될지 우려하지 않고, 원하면 누구나 지금의 방과후과정과 유사한 늘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학원 스케줄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았던 학부모들의 고생을 덜게 된 것이다. 교육부가 1월 1일부터 8일까지 초등 1학년 예비학부모 총 34만명 가운데 5만2655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83.6%(4만4035명)가 늘봄학교 참여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는 말이 아닌, 정책 수요를 묻는 말에 이 정도의 참여 의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교사들의 반대는 거세다. 교원단체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가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4일까지 초등학교 교원 1만1000여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92.4%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준비 미흡은 더욱 큰 문제다. 애초 2025년 전면 시행하기로 한 늘봄학교의 시행 시기를 1년 앞당기면서 인력, 공간, 추진체계 등의 모든 면에서 준비가 부족한 상태다. 당장 3월부터 시작될 1학기에 늘봄학교가 시행될 2700개 학교도 지난 19일에야 발표됐다. 정부는 학교마다 늘봄지원실을 신설해 공무원을 파견하고, 1학기부터 기간제 교사 2250명을 채용해 늘봄학교 신규 업무에서 교사 업무 부담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늘봄학교 업무를 담당할 기간제 교사 채용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강사 구인까지 미흡한 부분들이 터져 나온다. 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교실 리모델링을 포함한 늘봄학교에 공간을 내준 교사에게 연구비, 학급운영비 추가 지급 등의 인센티브를 내걸었고, 학교 밖에도 거점형 늘봄센터를 신축하거나 지정하고, 대학과 지자체의 유휴 공간 등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딱딱한 책걸상뿐인 교실 외에 아이들이 여러 활동을 하고 휴식을 취할 만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결국, 관건은 예산과 소통, 두 가지다. 일단 교육부는 2023년 방과후과정과 돌봄교실에 투입된 8729억원보다 4927억원 많은 1조3656억원을 늘봄학교를 포함한 초등돌봄 예산으로 책정했다. 구체적 예산 내역이 공개된 것이 아니라 쉽게 평가하긴 어렵지만, 한국사회가 맞이한 ‘초등돌봄 절벽’ 문제에 비하면 많은 예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안 그래도 준비가 미흡하기에 정부는 반대하는 교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한다.

혹자는 학교에 보육 책임을 맡기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지자체가 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더 책임을 맡을지를 두고 싸울 때가 아니다. 각자가 책임을 더 맡겠다고 싸워도 지금의 저출생이 해결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영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보육을 오랫동안 방치했다. 비록 준비가 미흡하다고는 하지만, 늘봄학교와 같은 정책이 늦어도 너무 늦게 나왔다. 더 이상 늦어선 곤란하다. 윤석열 정부가 초등돌봄이란 문제 하나만 제대로 해결해도 정책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정부가 될 것이라고 본다.

<윤형중 LAB2050 대표>

 

📰전문 보기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40228060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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