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혐오·차별 담긴 '개콘'... KBS 수신료 가치 아니길"

프로젝트
지난 12일 방영한 KBS 2TV <개그콘서트> 1051회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 한 장면
▲  지난 12일 방영한 KBS 2TV <개그콘서트> 1051회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 한 장면
ⓒ KBS  



"결혼기념일 그게 뭐 대수야? 우리 아들 돈 빨아먹으려고 아주 그냥. 나 때 결혼기념일은 별거 없었다. '어? 서방님이 그 여자 집 안 가고 우리 집으로 오셨지. 왜 서방님이 밥상을 안 엎으시지' 하면 그게 결혼기념일이고 동네 축하받았다." - KBS <개그콘서트>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 내용 일부

"여러분 결혼하세요. 결혼하면 진짜 좋습니다. 나만의 내조의 여왕이 생겨요. 얼마 전에 와이프랑 같이 백화점에 갔는데 와이프가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넥타이도 사주고... 그거 내 돈이야! 내 돈을 꺼내서 자기가 계산하고 왜 생색을 내는 거야? 내조의 여왕이 아니라 내 돈의 여왕이야!" - KBS <개그콘서트> '대한결혼만세' 코너 내용 일부





KBS의 대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개콘')가 3년 4개월 만에 방송을 재개했지만,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개그 소재로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지난 2020년 6월 "달라진 방송 환경과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새로운 변신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날(12일) KBS 2TV에서 다시 방영된 1051회에서는 외국인을 희화화하는 말투와 행동,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 등이 개그 소재로 사용됐다. 이에 시청자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KBS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서 "불쾌하다", "다시 폐지하라" 등의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일찍이 우려했던 비영리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미디어감시팀은 지난달 16일 KBS에 "혐오와 차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웃음과 재미를 선보여 달라"면서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했던 프로젝트 내용을 첨부하니 <개그콘서트> 제작 시 참고 해달라"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다음은 김정덕·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미디어감시팀 활동가와의 주요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웃음 아닌 상처주는 희극인, 직업·소명에 어긋나"

 

지난 1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KBS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 남긴 게시글.
▲  지난 1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KBS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 남긴 게시글.
ⓒ KBS  

 

 

- <개그콘서트> 1051회 방송분을 본 소감은.



김정덕 : "<개그콘서트> 방송 재개가 결정되고 난 뒤 (누군가 상처받는 개그가 반복될까) 무척 우려했다. 이후에 <개그콘서트> 김상미 CP가 한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한 걸 봤는데 '공영방송 기준에 맞게 다같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 '좋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까'하며 솔직히 기대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누구나 편안하게 볼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방송을 만들었다. '대한민국만세' 코너는 결혼하지 않으려는 세태나 결혼과 관련된 정부 정책을 다루려고 한 것 같은데, 그 지적을 왜 꼭 여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시청자 중에는 주부처럼 급여 노동을 하지 않지만 엄연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부분을 너무 단순화 시키고 '(주부는) 돈을 그냥 함부로 갖다 쓴다'는 식의 개그를 선보였다. 그걸 보고 누가 웃을 수 있을까.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장하나 :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를 보고 '결혼 이민자의 자녀들은 마음껏 웃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2022년 기준으로 약 17만 명의 결혼이민자가 거주 중이다. 만약 그 자녀들이 월요일에 등교했는데 친구들이 니퉁을 흉내 낸다면 과연 자신의 예민함을 탓해야 하는 걸까?



공영방송에 출연하는 희극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내고 연기하는 캐릭터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모습을 반영할 경우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인이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다면 직업과 소명에 어긋난다."





- KBS에 공문도 보낸 것으로 안다.



김정덕 : "지난 9월 18일 KBS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서 <개그콘서트> 시즌 2 홍보를 했다. 그 동영상에서 발달장애인 혐오, 여성 혐오, 인종 차별 등이 담긴 과거 개그 영상들을 영광스레 열거했다. 그런데 영상 제목과 영상 끝에는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합니다'라고 써뒀다. 공영방송 KBS 수신료의 가치가 혐오와 차별이 아니길 바란다.



더는 혐오와 차별을 이용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며, 개그를 보면서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개그를 만들어 주길 바라며 지난달 16일에 공문을 보냈다. (회신이 없어서) 11월 1일에는 KBS 홈페이지 시청자 소감 게시판에도 (공문 내용을) 올렸지만 '개그콘서트' 측은 아무런 답변이 없다."





- 방송 이후 온라인에서는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라며 비판하는 시청자 반응이 많지만,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시청자 반응도 있다.



장하나 : "타인의 예민함을 들먹이기 전에, 자신의 둔감함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사에서 결혼이민자와 여성을 웃음거리, 조롱거리로 삼은 점에 대해 KBS가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김정덕 : "KBS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다'라는 방송 가이드라인이 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개그의 소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어제 방송에서) 개그 소재로 다룬 사람들을 주체적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희화화했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시청자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개그콘서트>를 보는 시청자는 외국인, 여성, 장애인 등 다양한 이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개그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수 있다고 보나.



김정덕 : "출연자의 발언에 문제가 있는 경우 바로 사과를 하거나 용어 변경을 해야 한다.



지난 11월 1일 KBS <아침마당> 9512회 '도전! 꿈의 무대'가 기억이 난다. 그때 북한이탈주민에게 이호섭 작곡가가 '주체 창법이 나와야하는데... 북한에서 저런 식으로 하면 바로 아오지로 갑니다'라고 말하자, 사회자가 '저희가 가볍게 농담처럼 했던 이야기가 북에서 오신 분들께 상처가 되지 않았길 바랍니다'라면서 바로 사과를 했다.



얼마 전 웹 예능 '핑계고'에서 배우 박보영씨가 발언 중 유모차라는 표현을 썼지만, 제작진이 '유아차'로 자막을 변경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출연자, 사회자, PD 등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 모두의 감수성이 중요하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김정덕 : "개그 프로그램은 캐릭터를 설정하고 (개그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어제 방송처럼 차별과 혐오, 희화화가 담긴 개그가 반복될까 우려된다. <개그콘서트>에 공문을 보낸 것처럼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닿을 수 있게 제작자들에게도 공문을 보내는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개그콘서트>가 그냥 폐지됐던 게 아닐 거다.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감수성이 예민해져야 한다. 작은 목소리도 내치지 않고 귀담아들으면 좋겠다. KBS가 방송을 통해 사과하길 바란다."



 

지난 12일 방영한 KBS 2TV '개그콘서트' 1051회 '대한결혼만세' 코너 한 장면
▲  지난 12일 방영한 KBS 2TV '개그콘서트' 1051회 '대한결혼만세' 코너 한 장면
ⓒ KBS

 

📰[오마이뉴스 | 박수림 기자] 기사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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