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책&생각] ‘돕는’ 아빠 말고 ‘함께하는’ 아빠들…육아 ‘쫌’ 아네

프로젝트
보조 양육 아닌 주양육자로서의 아빠 경험담
직접 아이 씻기고 재우고 먹이는 ‘희로애락’ 담아
성차별적 육아 문화 등 사회구조 문제도 짚어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쓴 다섯 아빠가 직접 아이를 돌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미디어창비, 임주현 제공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쓴 다섯 아빠가 직접 아이를 돌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픽 장은영 [email protected],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미디어창비, 임주현 제공

 

 

 

썬데이 파더스 클럽
강혁진·박정우·배정민·손현·심규성 지음 l 미디어창비 l 1만6700원

 


 

“사린아. 오늘 제사래, 내가 빨리 가서 도와줄게. 먼저 하고 있어. 응?” “구영아. 나는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거든. 내가 너를 돕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니?”

 

 

일상의 성차별을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담은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이다. 작품 속 남편 구영이 뱉은 “도와줄게”라는 표현은 우리 일상에 만연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남녀평등 시대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남성은 집안일과 육아를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고 “도와줄게”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여기 ‘돕는’ 아빠가 아니라 집안일과 육아를 진짜 ‘하는’ 아빠들이 쓴 책이 나왔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마케터, 금융서비스 콘텐츠 제작자, 투자자, 기획자 등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아빠가 직접 쓴 육아일기를 엮어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해 2월부터 육아일기를 써 매주 일요일 밤 9시면 뉴스레터를 발행해왔고, 구독자는 현재까지 1700명에 이른다. 책에는 뉴스레터에 담았던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아빠들의 ‘땀내 나는’ 육아일기와 그들의 아내가 남편 육아일기를 읽은 소회 그리고 다섯 아빠의 인터뷰까지 담았다.

 

저자들의 진솔한 글을 읽다 보면 무엇보다 ‘직접 해보는 것’의 힘을 알 수 있다. 육아는 책으로 유튜브로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세계에 발을 내디딜 때에야 진정한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 손현씨는 2022년 4월부터 육아휴직(1년)을 하고 주 양육자로서 아이를 돌봤다. 그는 아내가 출근한 뒤 아이를 돌보면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밥을 차리고 치우는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16개월 된 딸은 아빠가 차려주는 밥이 맛있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맛없으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밥을 차렸다는 그는 육아휴직 뒤 가사와 육아 노동을 3개월 정도 반복해보니 그제야 “집안이 돌아가는 큰 그림이 보였다”고 전한다. 이렇게 자신감이 붙은 그는 급기야 1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부산 한달 살기에 도전한다. 엄마들도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일에 무모한 도전을 한 그를 보며 독자는 어느새 응원을 하게 되고, 그가 “아이는 홀로 키울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말할 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6개월 육아휴직을 한 저자 심규성씨 역시 “멀리서 볼 때는 모든 게 쉬워 보였던 육아”가 직접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딴판이었다고 실토한다. 휴직 전에 그는 밥은 시판 이유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주면 되고, 아이가 잠자면 옆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하거나 책을 보는 육아를 기대했다. 그러나 육아의 세계는 매일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준비와 계획만큼 무용한 단어는 없었다.” 애써 음식을 장만하고 밥을 차려도 아이의 이유 없는 단식 투쟁을 대면해야 했고, 야심 차게 아이와 나들이를 가도 아이가 카시트에서 숙면을 취하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처럼 직접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겨 본 아빠들의 ‘리얼’ 육아는 단순히 육아의 희로애락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책에서 이들은 우리 사회 구조 안에 성차별적인 문화가 얼마나 공고한지, 또 우리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며 깨달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심규성씨는 법적으로 보장된 아빠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처음 봤어요. 실제로 쓰는 분은” “회사 그만두려고?” “6개월이나? 회사가 괜찮대?”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0.78명)를 기록할 정도로 저출생 문제는 심각하고, 정치권부터 언론까지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의 상황이 됐다. 그런데 2년도 아니고 6개월 육아휴직을 한다는 아빠에게 주변 사람들은 축하가 아닌 걱정부터 했다. 정부가 육아휴직을 확대하겠다고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아빠가 쉽게 육아휴직을 할 수 있을까.

 

육아휴직 문턱을 넘어 현실 육아를 접해보니 현실 육아는 모두 ‘엄마 중심’이었다. 이유식 배송에 문제가 생겨 고객 게시판에 글을 남겼더니 댓글에 “맘님, 반갑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 달렸다. 육아를 하면서 매일 쓰게 되는 물티슈, 이유식 택배 상자, 기저귀 뒷면에는 ‘엄마, 오늘도 힘내요’ ‘엄마의 육퇴를 응원합니다’ ‘엄마의 깊이 있는 안목에 보답하도록’과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18개월 아기와 백화점 문화센터에 수업을 들으러 갔더니 모든 강좌가 ‘엄마랑 아기랑’ 카테고리로 묶여 수강을 포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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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주 양육자로서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선 아빠들에게 육아 걸림돌은 이뿐만이 아니다. 손현씨는 아이를 데리고 경주 카페에 들어갔다가 “노 키즈(NO KIDS) 존”이라는 말에 나와야 했고, 심규성씨도 가고 싶었던 건축답사 프로그램을 신청하려고 했더니 ‘유아 동반 불가능’이라는 공지를 마주했다. 아빠들은 일상에서 아이를 동반한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소외되는 경험을 하며 우리 사회가 아이와 부모를 환대하지 않고 있는 것을 절감한다.

 

“보조 양육자가 아니라 주 양육자로서 육아에 임하는 아빠들, 다시 말해 육아 현장에 함께 있는, 엉덩이가 가벼운, 엉덩이를 떼는 아빠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이런 아빠들의 존재가 더 알려지고, 이런 아빠들이 더 늘길 바랐습니다.”

 

편집자 김미라씨는 이 책을 내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뉴스레터 구독자 가운데 20대 미혼 여성은 이런 후기도 남겼다. “자라나는 아이의 순간만 캡처한 화면이 아닌, 일련의 모든 과정과 시간을 함께 기록하고 나눌 수 있는 아빠와 함께라면 출산과 육아 그 살벌한 전장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어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양육자에게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라는 위안을, ‘아빠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아빠들에겐 선배 아빠의 다정하고 섬세한 조언을, 저출생 시대 해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성평등 정책의 필요성과 효용성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고마운 책이다.

 

양선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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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906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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