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일 포기 뻔한데 애 낳으라고요?” 경력 무덤 들어가는 여성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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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공백 커지는 자녀 초등학교 입학 시기 경력단절↑…“현금성 정책보다 노동환경 개선 필요”

 

[일요신문] “이러면서 애 많이 낳으라고요? 애 낳고 직접 길러보니 ‘딩크족’ 선언했던 친구가 현명하다고 느껴집니다.”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엄마와 함께 하교하는 모습. 기사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연합뉴스

자녀가 이번 달 초등학교에 입학한 박이선 씨(가명‧41)의 말이다. 박 씨는 지난 1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오후 12시 30분이면 하교하는데,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 퇴근해서 집에 오는 시간까지 장시간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 박 씨는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퇴사를 했다.

직장을 다니는 기혼 여성들은 임신‧출산 시기에 한 번, 그리고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경력 위기를 겪는다. 박 씨도 출산 후 첫 번째 경력단절을 겪었고, 재취업 했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면서 두 번째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특히 돌봄 공백 시간이 길어지는 초등학교 입학이 임신‧출산 시기보다 경력단절에 더 큰 위기라고 워킹맘들은 입을 모은다.

여성들의 이 같은 부담은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국가 평균인 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데다 이들 중 꼴찌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합계출산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7일 국무조정실이 공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미혼 청년 대상 중 향후 결혼 계획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75.3%였으나 자녀 출산 의향에 대해서는 63.3%만 있다고 답했다. 남성은 70.5%가, 여성은 55.3%가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해 남녀 차이가 컸다.

출산 의향과 관련해 남녀 차이는 육아의 주체가 대부분 여성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가정 내 돌봄에 대한 책임과 부담감은 한국 여성이 경력을 포기하는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기혼여성의 고용현황’ 자료를 보면 경력단절 사유로 ‘육아’를 꼽은 여성은 42.8%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결혼(26.2%), 임신‧출산(22.7%), 가족돌봄(4.6%), 자녀교육(3.6%) 순이었다.

2021년 OECD 회원국의 여성 연령별 고용률 분석을 보면, 25~29세에 70.9%이던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35~39세가 되면 57.5%까지 13.4%포인트 떨어진다. 대부분 OECD 국가 여성 고용률은 20대, 30대, 40대까지 계속 상승하다 50대 이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우리나라만 30대에 크게 하락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의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두드러진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기혼여성의 경력단절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경력단절 여성은 139만 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만 1000명 줄었다. 경력단절 여성 수는 2017년 183만 7000명, 2018년 184만 7000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4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성 인구 자체가 줄었고 결혼‧출산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여성의 취업형태 및 근무유연성이 경력유지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는 “최근 경력단절 여성의 규모가 감소한 것은 기혼 여성의 규모 변화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며 “경력단절이 완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기혼여성의 감소에 기인한 것”이라 분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 모습으로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정부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방지하고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2021년까지 16년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0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도 0~1세 부모급여를 대책으로 내놨지만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저출산 대책 중 하나로 아동수당을 1인당 월 100만 원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출생률을 높이려면 출산계획이 없는 사람들이 결심하게끔 해야 하는데, 기존의 현금성 정책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며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노동환경, 주거문제 등 시야를 넓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의 박이선 씨는 “현금 쥐어주고 애 낳으라 하면 누가 낳겠나”라고 반문하며 “돈으로 유인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인적 낭비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일하면서도 아이를 안전하게 돌보며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초저출생·인구위기대책위원회 제1차 토론회에서 “지금까지의 정책이 아이를 낳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면 출산‧돌봄‧교육‧진학 모든 부분에서 국가의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완전히 다른 특단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여성들은 이 치열한 세상에 살기 위해서 경력단절을 원하지 않는다”며 “국가에서 돌봄을 책임질 수 있는 방향으로 분명히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여성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열릴 예정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는 임신‧육아기 여성 근로자를 위한 유연근무제 확대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박민아 공동대표는 “여성의 고용단절 문제가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육아기 단축근무,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저출생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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