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칼럼] 정치하는엄마들이 꿈꾸는 세상 (백운희)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에 정치하는엄마들을 소개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 간의 여정을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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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엄마들이 꿈꾸는 세상'

나는 비정한 엄마인가

겨울은 유난히 아픈 계절이다. 몇 해 전 일이 생각나서다. 날이 채 밝지도 않은 아침 7시, 곤히 잠든 네 살 아이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그만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행여 추울까 이불을 덮어 주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그 시간에는 아이를 깨워야 늦지 않게 출근할 수 있다. 생후 20개월부터 기관에 다닌 아이는 한 번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는 말로 나를 힘들게 한 적이 없다. 그날도 그저 졸린 눈을 뜨지 못한 채  “엄마, 조금만 더 자면 안돼요?”라고 작게 물었을 뿐이다. 그 말에 내 마음은  무너졌다.
아이를 낳고 70일 만에 회사에 복직했던 날도 기습 한파가 매서웠다. 스타킹조차 신지 못한 맨발을 하이힐에 구겨 넣고 바쁘게 나선 아침, 출근길에 만난 누군가에게 '비정한 엄마'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어린애를 두고 일하러 나왔다"고 말이다.
조용히 반문했다. “70일 된 아이를 두고 나온 엄마가 비정한가요.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가 비정한가요?” 그는 엄연히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조차 여전히 많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키울 시간은 허락하지 않는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취업여성의 일 가정 양립실태와 정책적 함의’ 보고서를 보면 2011년 이후 출산한 15-49세 직장인 여성의 41.1퍼센트만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1)
이 가운데에서도 공무원, 국공립 교사 외 정부 투자출연기관 종사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각각 75퍼센트와 66.7퍼센트인 반면 일반회사원은 34.5퍼센트에 그쳤다.

나 역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어 쓰지 못했다. 당시 남편은 장거리 출퇴근을 한 데다 야근이 잦았기에 자연히 퇴근 후 독박육아가 이어졌다. 새벽에야 잠이 드는 아이를 재우고 난 뒤 꾸벅꾸벅 졸면서 일을 해야 했다. 박쥐엄마, 그게 나였다. 출산 후 업무능력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기 싫어 신을 스타킹이 떨어졌는데도 챙겨두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일에 매달렸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그날, 조금 더 자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조차 들어주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간신히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리기로 결정했다. 출산만 권하면서 안전망은 제대로 갖춰 놓지 않은 사회에 물음을 던지기보다, 개인적인 불행으로 문제를 돌린 것이다. 그 후 나는 내 이름보다 ‘누구 엄마’로 불리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진 ‘경력단절 여성’이 됐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54세 이하 기혼여성 중 20퍼센트가 경력 단절 상태에 놓여 있다. 숫자 속에 채 드러나지 않은 주변의 사연들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 하나 일을 그만뒀다고 가정에 닥친 어려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살림과 돌봄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사회 구조는 그대로 두고, 왜 엄마들이 ‘전업맘’ ‘워킹맘’ ‘경력단절 여성’으로 분류돼 고통을 강요받아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시작

한국사회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깨닳은 것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과 고충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말은 그럴듯한 양육 이론으로 포장돼 과도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또한 내 뜻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육아와 교육정책의 시행착오를 아이와 함께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대표적으로 허술하게 시작된 무상보육정책이 그렇다. 인근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고, 인기 높은 곳에 보내기 위해 입소 대기를 신청해야 했다. 심지어 친구들은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입소대기 행렬에 동참했다. 입소 경쟁은 전업맘과 워킹맘을 심리적으로 가르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보육기관 정보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주변의 '입소문'에 의존해 정보를 찾아야 하고 이는 개인의 역량에 맡겨진다. 새로 적용된 맞춤형 보육 역시 원성이 자자했다. 엄마의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종일반과 맞춤반으로 체계를 나누면서 '가르기'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보육현장에 편법과 꼼수가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식으로 전락한 육아정책 앞에서 분통이 터졌다.

그러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올 해 3월, <한겨레>에 실린 장하나 전 국회의원의 글(주 2)을 읽고 뜨겁게 공감한 엄마들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결국 오프라인 만남까지 갖게 된 것이다.

주 2) <엄마들이 정치에 나서야만 독박육아 끝장낸다>를 시작으로 육아, 출산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첫 집담회에는 알음알음 전국에서 모인 30여 명의 엄마들이 자리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거나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함께 였다. 자기소개 시간은 눈물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엄마들은 참아왔던 눈물과 함께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얻었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 달라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또한 정부가 저출산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으면서도 정작 관련 정책과 예산은 제대로 편성하지 않는 건 엄마들이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의 평균연령이 55세이고, 83퍼센트가 남성이라는 점은 엄마들의 목소리를 담기 어려운 정치적 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당사자 정치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우리는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논의는 비영리단체 출범으로 귀결됐다. 각자 자신있는 분야에 손을 들고 준비를 맡은 엄벤저스(엄마 +어벤저스)의 활약이 더해져 마침내 6월 11일 '정치하는엄마들' 이 창립총회를 열었다. 우리는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불합리한 정책과 모순을 바꿔보기로 했다.
총회 현장의 열기는 높았다. 정관을 놓고도 열띤 제안과 토론, 동의와 제청이 이어졌다. 단체 활동의 주체인 엄마를 ‘생물학적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조부모, 동성부부 등 돌봄을 수행하는 모든 양육 주체를 아우르자는 의견과 사회적 모성의 개념이 더해져 집단 모성이 등장했다.
또한 단체의 활동과 역할, 추구하는 가치를 논의해 ‘집단모성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이 탄생하게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 각각 홀로 존재했던 모성이 창조적 협력을 통해 교육, 복지, 환경, 평화 등의 문제를 함께 바라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그동안 함께 하기 어려운 것으로 치부됐던 모성과 페미니즘의 개념이 결합한 새로운 집단의 등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모성을 바탕으로 모든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돌보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그들의 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모순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 정치하는엄마들 정관 중에서

집단행동으로 사회를 바꿔 나가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여러 논의 끝에 보육과 노동문제 해결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기-승-전 -노동시간. 엄마들은 부모의 과도한 노동시간이 출산과 육아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에 닿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 노동환경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책지원도 돌봄 서비스를 늘리거나 지원금을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모의 시간을 서비스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더구나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 부문 불평등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결국 육아 문제에 직면한 가정에서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경우 대개 ‘여성’이 되는 현실을 낳는다. 그렇게 아빠들은 과도한 경제활동의 현장으로 내몰리고, 엄마는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립 첫 단체행동으로 지난 6월 21일 국회 앞에서 ‘칼퇴근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안 통과 여부를 손에 쥔 국회 앞에서 문제 해결을 바라는 당사자로서 엄마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정치 참여를 선언하자는 의미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구호를 외친 경험은 생각보다 값졌다.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 이후에도 특목고, 외고 등 특권학교 진학이 결국 영유아기부터 사교육 과열로 연결되는 문제를 제기하며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출범식'에서 힘을 보탰고 초등 성평등연구회 교사들과 모여 생각을 나누고 이후 가칭 페미교육네트워크 연대단체로 참여해 페미니즘 교육과 페미니스트 교사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에도 힘을 실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급식이 맛있어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 밥을 책임지는 급식 노동자는 내게 더 없이 고마운 분들이다.  지난 7월 학교의 비정규직 급식 노동자들을 가리켜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냐’는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의 말에 분노한 우리는 긴급성명을 내고 돌봄과 가사노동의 가치를 재정의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의 국공립유치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사립유치원들이 집단휴업을 예고했을 때는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교육자의 본령을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하며 정부의 대책마련과 공약이행을 촉구했다.
국정감사에도 참여해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아이들의 식단 개선 문제를 제기했다.  성평등과 양육, 부모교육 등이 공교육 안에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는 정치하는엄마들 안에서 ‘함께교육팀’을 낳았고 아토피와 미세먼지 문제 같은 환경에 대한 관심은 ‘벌레먹은 사과팀’을 만들었다.
우리는 매달 집담회를 열어 새로운 회원의 이야기를 듣고 현안을 논의하기도 하며 회원들에게 필요한 내용의 강연도 이어간다. 책을 통해 자신들의 생애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엄마들의 책장’ ,부부 문제와 양육의 고충을 나누며 도움을 주고받는 '힐링팀', '아두이노 메이커팀' 등 자조 모임도 생겨나며 회원들간 서로를 보듬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바라는 세상

정치하는엄마들에 가입한 회원은 90여 명이다. 온라인 카페와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참여하는 이들은 각각 600여 명과 1000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 육아 중인 엄마, 아빠들이다. 회원들은 사안이 생길 때면 부족한 시간을 쪼개거나 아이들이 잠드는 육퇴(육아퇴근) 이후 단체채팅방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실행 방안을 논의한다. 긴급하게 논평을 쓸 때면 휴가 중인 회원이 현지에서 글을 다듬어 보내는 일도 새삼스럽지 않다.
창립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정치하는엄마들이 이뤄낸 결과물들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이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녹아 있다.
대부분이 학생운동은 물론 시위, 집회 경험과는 거리를 둔 삶을 살았고, 여전히 외부에 나서는 게 어색한 엄마들이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뜨면 잠들 때까지 시간에 쫓겨 발을 동동 구르는 평범한 엄마들이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없다고, 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참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현장을 뛰어 다니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것이 '모든 걸 혼자해야 해 내야 한다'는 책임과 두려움이었다. 심리적 지지세력이나 문제의식에 공감해주는 이들이 없다는 사실은 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용기를 내니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 밖으로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 걸어주었다.
엄마 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사회지만 여전이 이 순간에도 새로운 엄마가 탄생한다. 엄마들의 던지는 이 질문과 요구에 사회가 답할 때 우리의 삶은 변화한다. 그 답을 듣기 위해 엄마들은 오늘도 거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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