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동체 벗]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혐오❜ 사이에서

[기획 /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의 자리를 묻다]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혐오’ 사이에서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기르는 사회를 위해

 

오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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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엄마들.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 활동가, 작가, 살림 노동자.


 

‘애티켓’ 캠페인 영상은 왜 논란이 됐나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애티켓’ 캠페인으로 최근 온라인이 뜨겁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출연해 “당신은 ‘애티켓’이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해당 영상은 현재 댓글을 쓸 수 없도록 막혀 있는 상태다. 대신 영상에 대한 반응을 다른 매체의 기사들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복사한 듯이 비슷한 제목과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들에는 커피를 쏟고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 ‘지나친 배려’이며, ‘배려를 강요’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캠페인의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아이도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없으니까’, ‘모든 아이가 편안할 수 있도록’, ‘모든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아이를 배려하여 “괜찮아”라고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사의 제목과 내용만 본다면 오해할 만한 여지가 다분한 영상과 캠페인이었다. 양육자인 내가 보면서도 해당 영상에서 제시하는 상황이 적절한 예시인지 의문이 들었다. 누구도 남에게 불편을 끼치고 나서 무조건적인 배려를 바라지 않으며, 무례한 행동을 일부러 하고 이해받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어린이가 소중한 존재라는 말은 어린이를 왕처럼 애지중지 대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어린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한 사람의 어린이를 그대로, 오롯이, 인정해 달라는 호소다.

 

무례와 배려 사이에는 수많은 상황적 맥락이 존재하는데, 논란이 되었던 영상은 극단적인 경우만 모아 편집한 내용이기 때문에 반감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남녀를 보지 못하고 공을 차서 커피가 하얀 바지와 운동화에 쏟아지는 장면,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며 울고 보채는 장면은 연출된 상황이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되도록 업무가 끝나지 않아 아이가 기다리는 상황도 실제로는 하원 도우미를 쓰는 경우가 많으며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영상의 상황 예시가 더 적절하게 어우러지기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반감을 품을 내용은 아니었을 텐데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더군다나 예상치 못하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사과하지 않는 양육자는 더더욱 없다. 영상에서 사과하는 장면이 나왔는데도, 논란을 받아쓴 기사에서는 어린이와 양육자가 사과하는 장면에 대한 서술은 쏙 빠져 있었다.

 


어린이와 양육자에 대한 편견

어린이와 양육자 들은 일상에서 ‘맘충’ 혹은 ‘급식충’이라는 혐오 딱지를 피하고자 항상 주변을 살피고 고군분투한다.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모범 시민’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식당에 가서 먹고 난 자리는 최대한 원래 상태대로 가지런히 정리하고, 테이블 아래 흘린 음식까지 치우고 간다. 어린이를 위한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기꺼이 추가 요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대다수의 양육자가 그렇다.

이상하게도 ‘맘카페’를 떠도는 익명의 ‘맘충’들은 왜 이리 많은지. 식당에서 누가 기저귀를 버리고 갔다더라, 어린이가 떠들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데도 방치하더라는 등의 말은 너무 쉽게 공기 중을 떠돈다. 게다가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무례를 일삼는 양육자에 대한 공격은, 주로 ‘엄마’ 역할을 맡는 여성들에게 화살이 향하기 마련이다. 의도적인 무례함과 뻔뻔함으로 중무장한 양육자는 현실에서 보기 힘들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닌 사회에서 ‘맘충’이 되고 싶은 양육자는 어디에도 없다. 철없는 ‘급식충’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어린이도 없다.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한다’라고 하지만, 활발하게 뛰어놀면 산만하다거나 사고뭉치라며 혼나기 일쑤다. 보도를 지나갈 때조차 망아지처럼 뛰어다닌다며 각종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된다. 인간은 누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실수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이러한 점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린이라는 말에서 따온 ‘○린이’라는 표현은, 어린이는 곧 서툴고 미숙한 존재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초보적이고 어설픈 존재, 무언가를 배우는 단계에 있는 미완의 존재로만 인식하는 한, ‘○린이’ 같은 표현이나 ‘노키즈존’이 사라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어린이가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 울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서다. 어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차근히 설명하기보다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데도 어린이는 ‘떼쓰기’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손가락질 받는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역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귀하다고 하지만, 정작 아기가 울면 사람들은 시끄럽다며 귀를 막고 눈살을 찌푸린다.

어린이는 시끄럽고 불편한 존재라는 인식은 사업주뿐만 아니라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이용자들에게도 있다. 혐오는 혐오를 낳는다고 ‘노키즈존’이 생기자 다른 한편에서는 ‘노아재존’, ‘노시니어존’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노○○존’ 매장이 확장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의 발언권이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혐오는 다루기 쉽고 더 약한 존재에게 쉽게 흘러간다.

우리는 어린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겉으로는 말하지만, 사실은 어린이를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다. ‘미래의 꿈나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서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히게 만든다. 현재 행복하지 않은 어린이가 미래에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어린이가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양육자도 육아하기가 훨씬 편안할뿐더러, 어린이도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초경쟁 시대에 출산을 꺼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다. 저출생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어린이를 국민연금과 세금을 낼 국가의 소득원, 미래의 노동력이자 국력으로만 바라본다. 그 곁에는 출산 지원금에 출산 축하 선물까지 챙겨 주고, 양육 수당, 아동 수당도 주는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는 냉소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각종 수당은 아동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일 뿐이다. 임신, 출산, 육아의 산을 넘고 있는 양육자 중에서 얼마의 지원금을 받겠다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린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어린이답게 지낼 환경을 만들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어린이를 미래의 언젠가 날개를 펼칠 꿈나무로 보는 시선이 문제다. 출생률을 높이고 싶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어린이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은 오직 양육자 개인의 몫으로만 남아 있다. 개인에게 계속 부담을 짊어지우고, 어린이를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양육자와 어린이의 행복은 요원할 것이다. 어린이로서 충분히 존중받고 행복한 세상, 아이와 함께하는 세상의 모든 양육자가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아이를 낳는 것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어린이와 양육에 대한 교육이 보편화되기를

아이를 낳고 길러 보니, 어렸을 적 나의 부모와 주위의 어른들이 해 주었던 말이나 행동들이 자주 생각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말과 행동을 아이에게 전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알다시피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한다. 사촌이나 형제자매를 통해서 이해하게 됐을 어린이의 특성과 육아법을 저출생이 일반화된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배우기 어렵다면, 영유아와 어린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임산부가 산부인과에서 임신, 출산, 육아 교육을 하듯이, 학교에서 임신, 출산, 육아에 관한 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아니면 특별 활동 시간에 아기를 초대해서 직접 아기를 보고 함께 놀이 하는 시간을 가지며 영유아와 어린이들의 특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배우고 토론하는 내용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었으면 한다. 직접 접하고 경험하는 것만큼 확실한 공부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가족과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워 육아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 상황을 중단하고, 모든 아이는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사회적 모성으로서 함께하는 육아를 제안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초경쟁 사회였다. 나만, 내 가족만,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두의 아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함께 키워 나갔으면 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 기관 외부에서도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사회 전체가 교육장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모두 함께 돌보고 성장하는 마음으로, 사회적 모성으로서의 육아가 사회 전반에 펼쳐지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아이들이 현재 나와 함께 살아가며 우리의 삶을 빛나게 만들어 주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더 자주 느끼고, 그 기쁨을 어린이들에게도 전해 줬으면 한다. 그래야 어린이들이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낄 것이다. 저성장, 고물가, 초경쟁 시대에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은 쉽게 돈으로 보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아이를 함께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❶ [“오은영 출연 ‘애티켓’ 캠페인, ‘지나친 배려’ 강요 구설”, 〈투데이신문〉, 2022년 5월 17일], [““커피 쏟고 울어도 괜찮아?”… 오은영 박사 ‘애티켓’ 캠페인 논쟁”, 〈여성조선〉, 2022년 5월 17일], [““이게 맞는 거야?”… 잘나가던 오은영, ‘애티켓’ 캠페인 논란”, 〈한국경제〉, 2022년 5월 16일], [““애가 남의 커피 쏟고, 식당서 울어도 괜찮다고 해라” 오은영 캠페인 갑론을박”, 〈데일리안〉, 2022년 5월 16일], [““커피 쏟고, 식당서 울어도…” 오은영 ‘애티켓’에 불붙은 논쟁”, 〈국민일보〉, 2022년 5월 17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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