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정동칼럼] 현장체험학습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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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현장체험학습 유감

2022.09.13 03:00 입력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나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다. 국민학교 교정을 떠난 지 33년 만에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접하는 셈이다. 달라진 건 너무 달라져 있고 그대로인 건 또 너무 그대로라, 이래저래 놀랄 일이 많다. 할 말은 많지만 할 수 없었던 한 맺힌 나의 학창 시절은 이미 막 내린 지 오래지만, 학부모가 된 지금이 바로 학교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사랑하는 딸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더 나은 삶과 공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체벌로 얼룩진 내 학창 시절의 한풀이를 위해서도, 내가 학부모인 동안에는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려 한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독자분들께도 당부 드린다. 정동칼럼을 읽는 여러분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해야 학교가 변화한다. 고된 돌봄과 살림과 돈벌이까지… 틈나면 쉬고픈 게 우리네 인지상정이나, 학부모로서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고결한 자(귀족 말고)의 책무(noblesse oblige)’다. 오늘날 어린이들의 삶과 일상이 한국 사회의 미래와 직결되는 만큼, 모두의 학교생활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학교에서 겪는 사회는 그들이 만들어갈 사회상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급식 모니터링이나 석면 모니터링 활동, 교육지원청별로 모집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등등 가정통신문으로 각급 위원회의 모집 공고가 뜨면 다시는 종이 분리수거함에 넣지 말길 부탁 드린다. 아주 귀찮겠지만, 조금은 쑥스럽겠지만, 2023년 1학기부터 독자 여러분의 맹활약을 기대해본다. (회의 시간이 평일 대낮에 잡혀도 당황하지 마시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9조의 2 제3항에 ‘국공립학교에 두는 운영위원회의 위원장은 회의 일시를 정할 때는 일과 후, 주말 등 위원들이 참석하기 편리한 시간으로 정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당당히 시간 조정을 요청하길.)

요즘 초등학교엔 소풍이 없다. 소풍 대신 현장체험학습(현체)이 있는데 내용은 소풍에 가깝다. ‘라떼는’ 소풍은 소풍대로 가고 현장학습은 현장학습대로 갔는데…. 어쨌든 ‘소풍’이란 고운 말이 그립다. 예전 같으면 봄 소풍이었을 딸의 1학기 현체는 꽃구경 대신 실내 놀이공원에서 VR(가상현실)과 5D 영상 등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나는 뭐, 괜찮다고 생각했다. 꽃이야 학교 운동장에도 피는 것이고, 부모(양육자)가 경제적·시간적인 여유가 없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안(못) 가본 놀이공원에 다 같이 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가을소풍이었다. 여름방학 직후 가정통신문으로 2학기 현체 신청서가 왔는데, 장소가 기마 공연 전문 테마파크와 부설 실내동물원이던 것이다. “엄마, 동물원이래….” 하교하자마자 알림장을 내미는 딸의 표정이 심란했다. 우린 아직 채식인은 아니지만 (딸은 채식지향 ) 둘 다 동물을 많이 좋아하고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 나는 2016년에 제정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했고, 통과시키진 못했지만 사육곰 특별법(웅담 채취용 사육곰의 구조 등)이나 해양생태계보전법 개정안(고래류의 전시·공연 금지),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고래류의 포획·수입 금지) 등 동물권 관련 법안을 여럿 대표발의했다.

“그래도 가면 안 돼?” 딸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 모양이다. ‘동물들이 불쌍하다. 가고 싶다. 가면 안 된다.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친구들이랑 가고 싶다….’ “당연히 가도 되지. 엄마는 두리가 가고 싶은데 억지로 못 가게 하지 않아. 그리고 두리 혼자 안 가는 건 별로 안 중요해. 친구들하고 선생님께 잘 이야기해서 다 같이 안 가는 게 중요하지. 두리가 학교에 가서 잘 말할 수 있지?” 작년에는 병설유치원의 운영위원장이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시고 고향 제주로 이사 온 뒤에는 초등학교 운영위원회에 지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현체 장소를 정할 때 미리 의견을 내지 못했고, 그 막중한 임무를 뒤늦게 딸에게 맡긴 것이다.

“엄마, 선생님이 이번에는 못 바꾸고 다음부터는 안 간대.” “오! 잘했어. 친구들은?” “친구들도 불쌍하대.” 며칠 후 “재밌었니?” “아니.” “왜?” “철창 안에 갇혀서. 앵무새도 잘 못 날아. 속 날개 잘랐나 봐.” “말 쇼는 안 멋졌니?” “아니, 채찍 소리가 너무 커서 뒤쪽에 앉아도 우렁차게 들려.” “그래도 친구들이랑 도시락 먹으니까 재밌었지?” “응.”

늘 나를 위해서 초인적인 우리 엄마는 놀랍도록 회복하셨고, 나도 내년에는 반드시 학교운영위원회에 지원할 예정이다. 내년 현체 때는 학생들이 동물보호단체나 동물구조기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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