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모두가 노동자, 모두가 돌봄자-'48시간 가사노동 기록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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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제1401호] 돌봄의 무게

코로나 감염병 시대를 맞아 더욱 깊어진 필수노동 돌봄의 무게, 여러분은 얼마나 느끼고 나누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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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이 '48시간 가사노동 기록 실험'을 기획했는데요. 

다양한 돌봄노동자들이 처한 구체적인 오늘을 살펴보고, 사사로운 일로 치부되는 돌봄문제가 개개인들에게 과중되어 야기되는 구성원간 불평등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방안을 나눠봅니다. 

 


모두가 노동자, 모두가 돌봄자

부부 9쌍의 ‘48시간 가사노동 기록’ 실험,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사노동 부담 실감
적절한 분담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 줄고 돌봄 인식 바뀌어야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오른쪽) 부부가 2022년 2월14일 주방에서 함께 설거지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참가자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냈다. 집안일은 누구의 몫인가?

 

<한겨레21> ‘48시간 가사노동 기록’에 참여한 부부는 모두 9쌍이다. 이 기록이 한국 사회 부부의 가사노동 현실을 대표하는 표본은 아니다. 개인과 가족의 특성, 기록한 48시간의 특수한 상황 등 변수가 있다. 그럼에도 이 기록을 통해 ‘일정한 패턴’이 엿보였다. 대체로 숨 막히는 가사노동의 연속이었다. 2022년 한국 사회의 어떤 전형이다.

 

 

하루 총 12시간의 노동

경북 포항에서 6~12살 아이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 박정애(41)씨의 말은 서늘했다. “저는 집안일 안 하는 시간을 쓰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박씨는 하루 평균 총 12시간 가사노동을 했다. 가정관리와 가족돌봄에 각각 6시간25분, 5시간35분을 할애했다.(아래 그림 참조) 김씨를 포함해 ‘48시간 가사노동 기록’에 참여한 18명은 모두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가사노동 부담이 늘었다고 토로했다. 어린이집과 학교 등이 확진자 발생으로 갑자기 문을 닫거나 재택근무가 늘면서 일과 돌봄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진 탓이다.

 

“남편들은 잘 모를 거예요. 학교와 학원에서 공지사항이 많아지고 확진자가 나오면 온라인수업으로 대체돼 아이 수업과 식사, 간식, 기타 일정을 제가 다 미리 챙겨야 하거든요.” 서울 서초구에서 초등학생 2명을 키우며 맞벌이하는 김다영(41)씨는 코로나19 이후 특히 돌봄 부담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유치원생을 키우는 유소희(40)씨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회사 근무시간이 더 정신없어졌다고 했다. “직장에서 근무시간인지 육아시간인지 구분이 잘 안 될 정도예요. 중간중간에 유치원 전화 받고 알림장 앱에 써야 하는 거 챙기고, 집안일 도와주는 친정엄마 카톡에 답하는 일이 늘었어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외부 도움을 받기도 여의치 않다. 아이 셋을 키우는 박정애씨는 “첫째 아이 원격수업은 로그인하는 것부터 도와줘야 하는데, 동시에 동생들의 수업 방해도 막아야 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게 버거워 학원에 보내려고 했는데, 학원에서도 계속 확진자가 나와 한 달, 두 달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 육아 재택근무 보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23일 약속한 공약이다. 부모가 원할 때는 육아를 위한 재택근무를 보장하고 이를 허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어린아이가 있는 부부일수록 재택근무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가끔 재택근무를 하면 촉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직종이라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는데도 남편이 두 아이를 돌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서울 양천구에서 3살, 6살 두 아이를 키우는 이윤미(38)씨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재택근무가 훨씬 힘들다고 했다. 이씨의 남편은 육아휴직 중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재택근무하면서 아이를 챙겨야 할 일이 많아서 ‘육아 재택근무’란 말에 잘 공감되지 않아요.” 회사를 운영하며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장현선(46)씨는 재택근무를 하다가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아이를 혼자 집에 남겨두고 10㎞ 떨어진 집과 회사를 여섯 차례나 오간 날이 있었다. 장씨는 “재택근무는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집에서 근무하면 동시에 두 개의 일(직장일과 집안일)을 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아내 최수연(49)씨도 “재택근무하면서 아이들 밥 챙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 밥 한 끼라도 챙겨준 학교가 새삼 고마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자녀 돌봄 시간은 보통은 아내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맞벌이와 외벌이 부부 남녀 1394명에게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견줘 자녀 돌봄 분담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물었더니, 맞벌이 여성은 40.7%, 외벌이 여성은 38.7%가 ‘(배우자보다) 본인이 더 많이 했다’고 응답했다. ‘배우자가 더 많이 했다’는 응답’은 6.0~7.5%에 불과했다. 반면 맞벌이 남성은 22.7%, 외벌이 남성은 18.8%만 ‘본인이 더 많이 했다’고 답했다. ‘배우자가 더 많이 했다’는 응답이 남성의 경우 맞벌이 23.0%, 외벌이 34.0%나 됐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코로나19와 가족생활 실태조사’, 2020년 7월 발표)

 

 

 

 

부부 5쌍 중 4쌍이 아내가 자녀 교육 전담

모든 게 코로나19 탓만은 아니다. 가사노동은 부부 사이에 종종 ‘갈등의 씨앗’이 된다. 아내들은 대개 남편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를 내비쳤다. “저는 집에서 식사 준비하면서 아이 숙제도 봐주는데 남편은 아이와 잠깐 얘기하다가 본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점점 불만이 쌓이고 밤이 되면 폭발해요. 주말 여섯 끼 중 한 번만 남편한테 차리라고 100번도 넘게 얘기했는데 그걸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전혀 인식하지 않더라고요.” 학교 행정직으로 근무하며 유치원생을 키우는 유소희씨가 말했다. 유씨의 남편 김상훈씨도 불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을 ‘알고는’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집안일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들이에요. 청소기 돌리고 쓰레기 분리배출하고 빨래 개고 식기세척기 돌리는 일 같은 거요. 요리는 복잡하고 어려워서 벽이 느껴져요. 주말에 한 번은 제가 밥을 차려야 하는데 아직은 안 하고 있죠.”

 

아내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고 인정하는 남편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본인은) 관심이 없어서” “귀찮아서” “더 급한 사람이 하게 돼서” “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나아서” “절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경제적인 부분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건 책임감의 문제죠. 의무감 때문이라도 관심이 생기고 잘 해내야겠다는 의욕을 느껴야 하는데 아내가 주책임자고 남편은 부책임자라는 인식 때문에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금융권에서 일하며 초등학생 2명을 키우는 김다영씨는 어느 정도 기대를 내려놨다. “주말엔 남편이 아이들 학원 이동과 쓰레기 분리배출을 전담하고 청소나 식사 준비는 시키면 해요.” 김씨는 “남편이 자발적으로 하는 건 포기했고 시키는 거라도 빨리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맞벌이하는 유소희씨도 비슷하다. “남편이 조력자가 되지 말고 스스로 집안일을 해주면 좋겠어요. 지금은 집안일을 주체적으로 한다는 게 뭔지부터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다른 참가자들에 견줘 가장 균등하게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것으로 나타난 부부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이윤미씨는 “육아휴직 중인 남편을 배려해 퇴근 뒤 집안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하는데, 회사에서 이미 지쳤는데 집안일까지 하다보면 힘들어서 말도 곱게 안 하고 서로 트러블이 생기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면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남편 눈치도 보이고 퇴근하려니 회사 눈치도 보여서 양쪽 눈치 보느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고 말했다.

 

가정 내 불평등은 청소·설거지 같은 가사노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 5쌍 중 4쌍은 아내가 자녀 교육 업무를 전담했다. 유치원생을 키우는 유소희씨는 얼마 전 집에 휴대전화를 놓고 출근한 날을 기억한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출근하는 바람에, 집에 있는 남편에게 아이 유치원 알림장 앱에 글을 올려달라고 했어요. (남편이 글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몰라서) 결국 제가 인사말부터 문구 전체를 정리해줬어요. 항상 글을 올리는 건 내 몫이었기 때문이에요.” 여기엔 학교나 학원의 문제도 있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아내 강은주씨는 “학교 알림장에 전화번호를 등록할 때 부모 중 한 명만 등록할 수 있다. 그러면 남편이 보조 역할도 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반적인 생활 관리도 아내 몫으로 남겨둔 맞벌이 부부가 많았다. 유소희씨는 “아이가 먹고 입는 것, 유치원 갈 때 준비할 것 등을 근무시간 중간중간에 챙겨야 할 때가 있는데 모두 다 챙기지 못해 그 스트레스가 자꾸 아이한테 간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장현선씨는 “가사에 대한 주도자가 아내라는 생각이 너무 견고해서 내 딸이 결혼할 때는 (그 생각이) 깨질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하다가도 집 안 청소

물론 가사노동을 슬기롭게 적절히 분담하는 부부도 있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을 키우는 남편 김홍일씨는 “(엄마들 커뮤니티가 있어서) 학교와 학원 연락이나 결정사항은 아내가 맡고 나는 아이들 숙제와 공부를 봐주는 걸 전담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라 혼자 출근하는 아내 이윤미씨는 “내가 출근할 때 등원시키는 첫째 아이 어린이집은 나에게 먼저 연락하고, 집 근처 둘째 아이 어린이집은 육아휴직 중인 남편에게 연락한다. 남편이 육아와 어린이집에 관심이 많아서 궁금한 게 있으면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먼저 연락해서 알아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선식 기자 [email protected]·박다해 기자 [email protected]

*‘여성의 일’이라는 덫 기사로 이어집니다.

 

🟣‘모두가 노동자, 모두가 돌봄자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621.html

 


‘여성의 일’이라는 덫

부부 9쌍의 ‘48시간 가사노동 기록’ 실험, 돌봄 전담과 커리어 희생의 악순환

 

부부 가사노동 기록 참가자 5명이 보내온 가사노동의 흔적들. 각 참가자 제공

 

*참가자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모두가 노동자, 모두가 돌봄자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남편 김진욱씨는 “만년 과장”이란 마음으로 직장을 다닌다. 그는 사무실에서 유일한 맞벌이 부부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서울 성동구 마장동까지 1시간 넘게 출퇴근하는 그는 언제나 오후 6시 ‘땡’ 치면 집으로 출발한다. 직원들과의 약속은 대부분 점심으로 돌리고, 피할 수 없는 회식은 1년에 한두 번꼴로 참여한다. 가사노동, 양육 등의 문제로 아내와 오랜 갈등을 겪은 끝에 터득한 나름의 생존법이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술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한때는 ‘워커홀릭’처럼 일했는데 어느 날 (늦게) 퇴근하고 오니 집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 싶었죠. 한번은 아내가 ‘왜 회사를 다니냐’며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는데, 답은 명확하잖아요. 가족 때문이라는. 그래서 다 내려놓고 본사에서 변방으로 왔어요.” 김씨는 이후 1년 동안 육아휴직도 내고, 본사에서 지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에는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금요일은 오후 2∼3시께 퇴근하는 유연근무제를 택했다. 당연히 그에게도 “승진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주변에서 왜 늘 뒤로 빠지냐고 할 때 (그 말을 듣고) 웃는 데도 10년 걸렸어요.”

 

김씨의 아내 장현선씨는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이사다. 남편의 노력에도 주변에서 공감받지 못하는 점이 그는 괴롭다. “시부모님은 아이를 낳을 때부터 ‘일을 줄이고 육아에 전념하라’고 했어요. 친정아버지도 ‘다들 그렇게 사는데 유별나게 그러냐’고 했고요.” 초등학생인 아이 또래를 키우는 주변 엄마들은 대부분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연히 남편보다 수입이 적다보니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공동육아를 위해 부부 4쌍이 함께 만들었던 휴대전화 메신저 단체대화방에는 어느새 엄마들만 남았다.

 

장씨는 48시간 동안 가사노동을 기록하면서 “일하거나 책을 보다가도 수시로 집 안을 청소하고 식탁 언저리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집’이란 이 공간을 떠나야지만 (가사노동을) 하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씨와 김씨 부부는 둘 다 나름의 노력을 하지만 가사노동과 양육을 온전히 지탱해나가기엔 “절대적인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가정 교섭력과 연결된 노동시장 격차

대개 더 많이 포기하고 희생하는 쪽은 여성이다. “육아휴직을 4년 해서 동기들보다 승진이 느려요. 남편과 같은 대학을 나왔는데 박탈감도 있죠. 업무시간에도 늘 아이들 학원 일정을 체크해야 하니 정신이 없고요.”(김다영) “육아휴직을 쓰면서 동기들보다 승진이 많이 떨어졌어요.”(이윤미) “육아휴직을 하고 승진에서 누락됐죠. 저 나름대로 욕심이 있는데 한 번 밀려나니까 회복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반면 신랑이 육아휴직했을 땐 시어머니가 ‘회사에서 괜찮냐’며 충격을 심각하게 받으시더라고요. 제가 (휴직을) 할 때는 누구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유소희) “학원 강사 일을 다시 해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퇴근이 저녁 8∼9시다보니 섣불리 못 나가요. 만약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고 이 나이까지 (일을) 쭉 했으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죠. 제가 뭘 할 때 아무도 저한테 ‘애들은?’이라고 물어보지 않을 테고요.”(박정애)

 

악순환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부부 중 누군가는 돌봄과 양육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결국 한쪽이 커리어(경력)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 여성의 평균 근속연수는 8.2년, 남성은 12.2년이다. 그러다보니 남성 1인당 평균임금이 7980만원, 여성은 5110만원으로 성별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2021년 2149개 상장기업 기준) 남성 평균 근속연수가 여성보다 긴 기업일수록 남녀 임금 차이도 대체로 크게 벌어졌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육아를 도맡아야 하는 30~40대에 뚝 떨어지는 M자형 그래프를 그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임금 차이는 가정 안에서 위계를 만들어낸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돈을 좀 못 버는 쪽이 집안일로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성별 임금 격차 때문에 여성은 가정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교섭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성별 고정관념 등에 따라 ‘여성의 일’로 굳어진 가사노동과 양육은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탈락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이는 다시 여성의 짧은 근속기간과 낮은 임금의 원인이 된다. 노동시장에서 이 구조적 격차는 다시 여성을 집안으로 옭아매는 덫이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유소희씨는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힘들었던 ‘독박 육아’ 시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편이 우리 둘 중 휴직했을 때 가정의 경제적 타격이 누가 더 큰지를 1순위로 봐야 한다고 했어요. 남편이 월급이 더 많은데 그걸 1순위로 꼽으면 내가 할 말이 없다며 싸웠죠.” 유씨 부부는 긴 싸움 끝에 결국 남편이 5개월가량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각자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얽히고설킨 매듭은 어디서부터 풀 수 있을까. 시행착오를 거쳐 남편과 나름 합의된 가사노동 기준을 만들었다는 정하윤씨는 말했다. “가사노동은 성별에 따른 역할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면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이란 인식이 필요하죠. 앞으로 자녀가 생기면 아이에게도 이 역할을 가르칠 생각이에요. 또 이번 ‘가사노동 48시간 기록’ 실험처럼 다른 구성원의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서 같이 하려는 노력도 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돈벌이 위주로 집안일을 분배하기보다 각자의 성격과 성향 등에 따라 나눠야죠.”

 

정씨의 말처럼 가정 안에서 가사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동자인 동시에 가정을 살피는 ‘돌봄자’로서 살아간다는 자각을 해야 한다. 누구는 주도하고 누구는 도와주는 관계가 아니라.

 

전문가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녀 돌봄을 위해 여성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시간제 노동자로 일하는 방식은 오히려 노동시장 내 구조적인 성별 격차를 심화할 뿐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여성이 시간제로 일하는 걸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이런 방식이 아니라 남성을 포함해 전체 노동시간이 줄어야 한다. 그동안 여성이 양육과 노동을 함께 하는 방식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택하게 했는데, 이게 보편적인 노동형태가 아니다보니 여성들이 계속 배제·소외·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참가자 부부들은 ‘남편의 절대적인 시간 부족’을 불평등한 가사분담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장현선씨는 “남편이 (가사노동을) 자발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임금노동자로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며 “오죽하면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건 어떠냐고 말해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맞벌이하는 남편 오기수씨도 “가사노동에 더 신경 쓰고 싶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은 야근하니 시간이 부족하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지 못하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근무시간이 짧아지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돌봄은 누구의 몫인가

노동시장의 변화뿐 아니라 교육현장의 변화도 필요하다. “맞벌이가 아이를 키우려면 학원을 (뺑뺑이처럼) 돌릴 수밖에 없어요.”(박영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하교 시간이 당겨지는데 부모는 늦게 퇴근하니 ‘돌봄 공백’이 생긴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여성의 고용단절률이 극심하게 오르는 건 양육자가 퇴근하기 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기관이 학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처럼 초등돌봄교실에 들어갈 자격을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 가정 등으로 한정해서 아이가 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양육자에 따라 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모든 양육자가 집에 있을 거라고 상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가정에서 하는 비공식 노동은 가족끼리 책임을 나누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가족과 사회가 이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는 점”이라고 짚었다. 특히 지금처럼 1~2인 가구가 절반이 넘는 사회일수록 가족의 책임에만 의존해서는 가사노동과 돌봄 모두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이후 (돌봄 공백으로) 가족생활이 피폐해지고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됐는데도 사회적 돌봄의 질을 높이는 문제는 얘기되지 않는다”며 “가사노동은 각자가 자기 삶에 책임지는 일이다. 자신도 돌보고 남을 돌보는 일이 삶의 기초가 되는데 이것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없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다시 오래된 질문을 꺼낸다. 돌봄은 누구의 몫인가? 가족인가, 국가인가?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집안일은 왜 가족 안에서 아내의 몫일 수밖에 없는가?

 

 

김선식 기자 [email protected]·박다해 기자 [email protected]

 

🟣‘여성의 일’이라는 덫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622.html

 


나도 억울합니다

아내만 억울한 건 아니었다. 제1398호 ‘억울한 부부, 연락주세요’ 기사를 보고 응모한 독자 14명 중 절반인 7명이 남성이었다. 남성들의 지원 동기는 이렇다. ‘평소 집안일로 많이 부딪힙니다.^^’(맞벌이 부부 남편 차기호) ‘나도 가사노동을 많이 하는 거 같은데 항상 아내는 본인이 더 많이 한다고 투덜대기에 진짜 과연 얼마나 차이 나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맞벌이 남편 김홍일) ‘배우자와 실제 가사분담 시간을 확인하는 계기를 갖고 같이 잘 살고 싶습니다.’(맞벌이 남편 오기수)

 

아내들의 출사표는 좀더 뜨겁다. ‘조금 전 남편을 생각하며 분노의 포효를 질렀는데 마침 억울한 부부는 연락 달라는 글을 보아서 지원함. 남자에게 가사노동 분담은 재활용품 분리배출 전담을 뜻하는 것임을 결혼 후 알게 되었다.’(맞벌이 아내 유소희) ‘남편과 나의 가사분담 비율이 불공정하다. 가사노동 주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맞벌이 아내 김다영)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 포항으로 내려와 살면서 가사노동과 양육 분담도 지역 편차가 심하다고 느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편들에게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겨나길 바란다. 인식 변화가 꼭 필요하고 그것에서부터 젠더 갈등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전업주부 박정애)

 

하지만 지원자 가운데 일부는 실제 기록 작성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설 연휴에 집안일로 크게 싸워서 같이 뭘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지원자도 있었다. 결국 부부 9쌍(18명)이 평일과 주말 하루씩 ‘48시간 가사노동 기록’을 완성했다.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기록한 일지를 모아 보면, 부부마다 고유한 가사분담 특성과 함께 전반적인 가사노동 분담 유형이 드러났다. 기록을 바탕으로 18명을 추가 인터뷰해서, 코로나19 이후 커진 가사노동 부담의 양상과 가사노동 분담을 둘러싼 부부 갈등에 대해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 아내 강은주(43)씨는 “나와 남편이 집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체크해보니 불평등이 심했다”면서도 “아이 하교 시간이 이르다보니 근무시간이 유연한 내가 전담하는데, 남편은 같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가사분담 불평등이 특정한 개인 또는 부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과제라는 점을 함께 짚어본 이유다. 개인과 가정, 직장, 사회가 모두 변해야 해결할 수 있는 과제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돌봄 공약도 함께 살펴봤다.

 

 

*참가자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김선식 기자 [email protected]

 


가족돌봄, 주말에 격차

어떻게 조사했나

 

<한겨레21>의 ‘48시간 가사노동 기록’에 참여한 부부는 총 9쌍이다. 맞벌이 부부가 7쌍, 남편 또는 아내가 혼자 일하는 외벌이 부부가 2쌍이다. 자녀가 있는 부부는 7쌍이었다.

 

참가자 18명(9쌍)에게 각각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들어가 ‘48시간’을 10분 단위로 입력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2022년 2월4일(금)~5일(토) 또는 6일(일)~7일(월) 본인이 수행한 가사노동을 시간대별로 기록했다. 기록할 때는 ‘가사노동 분류표’를 참고하게 했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시행하는 ‘생활시간 조사’의 분류표를 그대로 따랐다. 가사노동은 ‘가정관리’(28개 항목)와 ‘가족돌봄’(11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다만 통계청과 달리 ‘이동’도 가사노동으로 추가했다. 아이 등원이나 병원 진료 관련 이동 등은 엄연한 가사노동(육아)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뒤 참가자 18명의 총가사노동시간, 아내와 남편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과 그 비중 등을 계산했다.(위 그림 참조)

 

부부 9쌍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을 보면, 아내(5시간56분)가 남편(4시간10분)보다 1시간46분가량 많았다. 장보기 등 가정을 관리하고 아이 공부를 봐주는 등 가족을 돌보는 시간 모두 아내가 많았다. 가정관리시간은 아내가 하루 평균 3시간16분, 남편이 2시간41분이었다. 가족돌봄시간은 아내(2시간40분)와 남편(1시간29분) 사이에 더 큰 차이를 보였다. 평일(아내 2시간11분, 남편 1시간28분)보다는 주말(아내 3시간9분, 남편 1시간30분)에 격차가 컸다.

 

맞벌이 부부(7쌍)로만 한정해서 봐도, 아내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5시간5분으로 남편(3시간44분)보다 길었다. 특히 가족돌봄시간은 아내가 2시간6분으로 남편(42분)보다 3배 많았다. 직장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아이를 돌보는 책임이 여성에게 더 많이 쏠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가정관리시간은 남편(3시간2분)이 아내(2시간59분)보다 조금 많았다. 맞벌이 부부 남편 7명 중 3명이 주말에 대출상담, 반려동물 돌보기 등에 총 4시간40분을 할애한 특수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는 한국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평균치를 웃돈다. 통계청이 2020년 발표한 ‘생활시간 조사’(2019년 기준 전국 1만2435개 표본가구에 상주하는 만 10살 이상 가구원 약 2만9천 명 조사)에서 맞벌이 부부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아내 3시간24분, 남편 1시간3분이었다(가사노동 관련한 이동시간 포함해 계산). <한겨레21> 조사에서는 평균치보다 아내가 1시간41분, 남편이 2시간41분 더 가사노동에 시간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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