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초등돌봄 방향성 정립을 위한 토론회_김소향 활동가

프로젝트

 

돌봄과 교육은 하나, 그 중심은 아이들이다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김소향

 

세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지 이제 10년,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지겹게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말만 되뇌고 있습니다. 여전히 돌봄 정책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여러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함께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을 되살리지도 되살리려는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돌봄교실은 아이들의 생활의 터전이고 보육전담선생님의 일자리입니다.

 

부모들에게 돌봄은 복지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올해 3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시작하자 그동안 기댔던 '공적 돌봄' 고리가 갑자기 툭툭 끊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 사람들이 각자도생으로 버티는 걸 지켜보며, '대체 학교에 뭘 기대할 수 있기는 한가?' 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드디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엄마들은 3월을 악몽과도 같은 달이라고 부릅니다.

맞벌이로 아이 키우며 삶의 터전을 옮길 때마다 거쳤던 여러 어린이집에서 과도한 학습이나 부실급식 문제 등 이런저런 일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래도 돌봄 걱정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감지덕지한 일이었구나, 하고 쓴 웃음을 짓습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도 생계를 위해 일을 멈출 수 없는 엄마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아이는 적어도 어린이집에서 머물 수는 있었으니까요.

개학을 할 수 있기나 한 건지 모든 게 불투명했던 2월, 돌봄교실 수요조사를 하고 한달을 기다리고 또 추첨을 통해 겨우 돌봄교실에 확정되었습니다.

여태 돌봄교실 추첨에 당첨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주변 엄마 아빠들을 보며 씁쓸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정규 수업이 점심시간 전에 끝나고, 돌봄 교실에서 떨어지면 학교에서 가차 없이 '쫓겨나게' 됩니다.

초등학생이 되는 순간 갑자기 보편적 복지로서의 공적 돌봄은 사라지고 뽑기 운에 따른 추첨식 복지가 되는 것입니다.

 

초등학생 가정에 끼치는 영향

 

돌봄교실은 정규 수업을 끝낸 초등 저학년 아이가 본격적으로 학원 뺑뺑이를 돌기 전 그나마 '안전하게' 머물며 간식이라도 챙겨 먹을 수 있고, 다른 엄마들과의 교제가 어려운 워킹맘의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을 만나 어울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아이들이 돌봄교실에서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게 해주세요 .

 

엄마가 이렇게 노력하면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은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요. 하지만 이런 저의 약속은 공수표가 됐고 저는 여전히 '시간 거지'에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반쪽짜리 엄마입니다. 너무나도 절망스럽습니다. 정녕 우리 아이들도 저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희 아이들이 학교 안 돌봄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머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보육전담사 선생님들이 현실적인 돌봄이 가능한 수준의 인원인 1실 20명을 유지해주십시오.

 

이제 돌봄은 복지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돌봄은 대한민국 수많은 엄마들의 꿈의 사다리이자, 생계유지를 위한 생명유지 장치이자, 코로나 시국과 같은 비상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입니다.

 

저출산이 어쩌고 하며 괜히 몇 조 원씩 쏟아 붓지 마시고 그 예산으로 딱 한 가지만 한다면 바로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 안 돌봄망만 갖춰주십시오.

 

그 안에서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이 꿈과 아이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당하거나 '매정한 엄마'가 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한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은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 부터 시작됩니다.

 

높은 수준의 다양한 교육을 바라지 않습니다.

 

과밀한 정원수를 줄이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그것이 더 나은 삶의 돌봄 정책이 진일보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은 1전담1교실 학생수 20명 이하 일방적인 업무분장 철회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경기지역에 거주하는 어느 4학년 학생의 목소리를 대신 전합니다.

 


 

제목: 돌봄을 늘리자.

제가 제안한 것은 돌봄을 4학년까지 하자입니다. 그 이유는 돌봄은 재미있고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친구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돌봄에서 숙제를 할 수 있고 돌봄에서 놀 수 있기 때문에 제안한다. 그러면 학교가 재미있어지고 집에서 혼자 있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제안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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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 학생이 국어 숙제의 제안 주제로 삼은 건 "돌봄(교실)을 늘리자"였습니다. 이유는 ‘친구가 생길 수 있고 놀 수 있고 재미있고 집에서 혼자 있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학교와 배움의 본질과 초등 돌봄 공백의 원인을 간파한 이 학생이야 말로 돌봄 정책 논의의 장에 참여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꼭 학생주체도 불러 주세요.

 

‘돌봄(교실)은 재미있고 친구가 생길 수 있고 놀 수 있다. 그러면 학교가 재미있어진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안전하고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는 생활공간입니다. 또한 함께 먹고 놀고 일하고 배우는 삶의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 곳입니다. 작년 학교가 멈췄을 때 이 학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야. 친구가 없는 거라고.” 마스크너머에도 아이들은 친구가 됩니다. 학교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이고 관계 맺기와 사회화의 장임을 코로나를 통해 재확인 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이유는 학습 이상입니다.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 지식이나 정보만을 의미한다면 지금이라도 학교는 문을 닫아도 좋습니다. 그것만이 교육이라면 역병과 재난이 장기적으로 상존할 시대에 굳이 학교를 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공교육에서 학습에 대한 기대를 하는 학부모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되겠으며 돌봄마저 안한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교원단체가 주장하는 돌봄과 교육의 이분법적 구분이 자기모순임은 교권 스스로 증명합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점심시간은 무급휴게시간이지만 교사의 점심시간은 인성 및 생활지도를 포함한 유급시간입니다. 점심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한 명의 훌륭한 인간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길러내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또한 교육부가 작년 9월 추진했던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행법상 1년씩 세 번 쓸 수 있는 교육공무원 가사휴직의 사용 요건을 ‘가족의 사고나 질병 시’에서 ‘부양하거나 돌보기 위해’로 완화했습니다. 통과되었다면 국공립 교원은 육아휴직 3년에 돌봄 휴직 3년을 더하면 자녀돌봄을 위해 최대 6년간 휴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초등돌봄에 대해서 학교는 “공간만 빌려주고” 지자체가 운영한다는 논리를 앞세웠던 것과 상반되게 자신들의 ‘돌봄의 가치’를 적극 보호하고 보장하고자 하는 모습이 씁쓸합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하지만 이렇게 교사공무원처럼 다른 민간기업 노동자들로 3년의 육아휴직과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고 걱정 없이 3년이나 육아휴직을 쓰다 원래 자리 그대로 복직할 수 있는 교사들에게는 위 글은 쓴 학생의 ‘집에 혼자 오래 있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초등 돌봄 공백의 원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양육자들의 공적 돌봄 확대라는 피맺힌 절규를 모른 체 '수업이 끝난 후 학교에 남아 돌봄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식의 담론은 일하는 엄마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고마운 말씀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엄마들에게, 미안해하지 않도록 학교 돌봄의 질을 높이는 것이 답이지, '왜 아이들을 돌보지 않느냐'는 뉘앙스를 풍기는 의견은 결국 일하는 엄마들의 마음에 상처만 주고, 대한민국의 저출생과 경력단절 여성을 양산할 뿐입니다.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돌봄교실 제도를 먼저 면밀히 들여다보고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여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교사집단의 논리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일단 돌봄은 교육이 아니라고 선부터 그어버리는 교육부의 일방적인 외주화 결정은 향후 사고 발생 시 책임문제, 고용승계문제, 관리체계 이원화에 따른 관리감독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복지전달체계로서 민간위탁의 실패를 되풀이 할 것입니까.

 

초등돌봄의 법제화, 공적 돌봄 확대를 요구하는 양육자들은 단순히 자기 애 자기가 보기 싫어 학교로 떠넘기는 무개념 진상부모들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전쟁 같은 일터에서 하루하루 파리목숨 같은 삶을 부지하며 버텨오다가 초등돌봄 추첨에 떨어져 결국 눈물을 머금고 일터를 떠나야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이전에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해 이미 비자발적 “경단녀”가 된 안타까운 사연들은 차고 넘칩니다.

 

초등돌봄교실은 모든 초등학생이 누릴 보편적인 기본 권리로서, 정규교육과정이나 급식과 마찬가지로 양육자의 취업 여부를 묻지 않고 제공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초중등교욱법 개정으로 초등돌봄을 학교 사무로 규정 해야 하는 것은 돌봄 없이 교육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면을 빌어 교육부에 묻습니다. 초등 저학년 하교시간 연장문제는 왜 손 놓고 있는 것입니까? 초등돌봄공백의 원인은 하교시간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수업시간 차이에서 오는 초등돌봄 공백문제의 근본 원인입니다. 어린이집은 초대 오전 7시30분~오후 7시30분인 반면,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2시로 방과 후 및 초등돌봄정책으로도 돌봄 공백이 발생해 양육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선택합니다.

 

 

2018년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초등 저학년 3시 하교안을 발표하자, 학부모들은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당시 저출산위 발표에 따르면 초등학교 전 학년이 동시에 하교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화 돼있고, 한국은 특이한 구조를 가졌습니다. OECD 주요 국가들의 초등학교 수업시간을 보면 미국·캐나다 등은 하루 평균 4.9시간으로 모든 학년이 동일한데 반해 한국의 경우 1·2학년은 2.93시간, 5·6학년은 3.87시간입니다.

 

하교시간 연장안은 2009년부터 논의 됐으나 학급당 학생 수가 많다는 이유로 십 년 가까이 진척이 없다가, 2018년 저출산위가 2023년까지 시범운영 2024년 전면시행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자 금번 돌봄사태와 마찬가지로 교원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고, 교육부는 하교시간 연장을 포기했습니다. 교육부는 교육 공공성이 아니라 교원단체 특권유지를 위해 일하는 곳인가? 피해는 결국 학생들만 보고 있습니다.

 

하교시간 연장을 통해 방과후 학교(초등돌봄+방과후교실) 운영 시간이 줄어들면, 돌봄교실 2담임제 등 질적 제고가 가능합니다. 또는 수요에 따라 어린이집, 유치원처럼 7시 이후 돌봄을 제공할 수도 있게 됩니다.

 

돌봄과 배움의 중심은 학생에게 있고 모든 제도적 설계는 학생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돌봄은 시대적 요구입니다. 교육이 돌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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