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늘을 생각한다] 왜 CCTV 열람을 포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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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왜 CCTV 열람을 포기했을까

 

‘정치하는엄마들’로 아동학대 피해가족의 연락이 끊이질 않는다. 대개 이미 관할 경찰서에 입건된 사건들이다. 피해가족들은 어린이집 원장, 어린이집을 관리·감독하는 지방자치단체, 사건을 조사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그리고 경찰 등 수사기관까지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채 우리에게 연락을 취한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해가족들은 보호나 지원은커녕 2차, 3차… n차 폭력을 경험한다.
 

학대가 의심될 때 보호자가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CCTV를 확인했는데 학대 사실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괜히 아이만 밉보일까 하는 우려에서다. CCTV를 보겠다고 해도 원장들이 ‘내가 확인해 보겠다, 확인해 봤는데 별일 없더라, 걱정하지 말라’고 대응해버리면, 열람을 요구하는 건 더 어렵다. 가해교사가 3세 아동에게 물 7잔을 연거푸 먹여 구토 경련을 일으킨 학대행위를 수차례 반복한 울산 남구 국공립어린이집 사건의 경우, 피해아동의 엄마가 원장과 함께 CCTV 열람하던 중 학대행위가 나오자 원장이 열람을 중단하고 엄마가 기록하던 메모지를 빼앗아 찢어버리고 CCTV를 경찰에 넘겨 버렸다.

어린이집 CCTV 의무보관 기간은 60일이고, 휴무일을 제외하면 40일 정도 된다. 원장이 CCTV를 경찰에 넘겨도 경찰은 60일치 영상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는다. 무작위로 날짜를 10개 정도 찍어 확인하고 학대 정황이 안 나오면 사건을 종결한다. 그마저 8배속으로 확인하는 등 ‘날림’이다. 피해가족이 CCTV 열람을 요청하면 경찰은 ‘가해교사를 포함한 등장인물 전체의 동의를 받아오거나, 비식별화(모자이크 처리) 비용을 내라’고 한다. 경찰이 요구한 비용은 울산 남구 3000만원, 부산 기장군 1억원, 경남 창원시에서 2억원에 달한다. 피해가족들은 열람을 포기했다.

아동학대가 확인돼도 원장이나 지자체는 같은 어린이집의 보호자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즉 다른 피해아동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원장들은 이런 제도를 악용해 ‘피해아동이 문제아’라거나 ‘부모가 유난스럽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어린이집 영업에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피해가족을 이상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린다. 가해교사는 법적 처벌을 받더라도, 피해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한 원장들은 버젓이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이때 피해가족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단지 형사처벌의 문제가 아니다. 피해가족들은 구체적인 피해사실도 모른 채 피해아동의 심리치료를 해야 한다. 수사가 종결돼 공소장에 적시된 범죄사실 일람을 보기 전에는 피해사실을 알 수가 없고, 수사관이 확인한 피해사실은 빙산의 일각이다. 언어표현이 안 되는 영아는 CCTV 열람 없이 제대로 된 치료가 불가능하다. 수사 종결 전까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가해자가 교사인지, 친부모인지, 양부모인지, 계부모인지만 따지지 말고 대한민국 아동보호체계가 엉망진창이란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자.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2102191422111#csidxe858a64e2743b1cb834a8ee640cf6c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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