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유아 프로그램에 ‘화장한’ 어린이 출연자?
시민단체 “꾸밈 압력 학습하지 않도록”… EBS “기본적인 메이크업뿐”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두 딸을 키우는 윤정미(가명) 씨는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놀랐다. 유아 대상 프로그램의 어린이 출연자의 화장이 짙어보였기 때문이다.
윤 씨가 아이들과 시청한 프로그램은 EBS ‘딩동댕유치원’. 딩동댕유치원은 영유아 대상 프로그램의 대표격으로 국내 최장수 유아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딩동댕유치원에서 어린이 출연자는 ‘솔이의 괜찮아 괜찮아’와 ‘새별 선생님의 숲속 음악회’에 출연한다. 어린이 출연자들은 입에는 립스틱을, 볼에는 볼터치를 하고 있었으며, 눈썹을 정리한 것으로 보였다.
윤 씨는 “영유아가 보는 프로그램에서 여자 어린이 출연자가 화장을 하고 나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지난해에는 딩동댕유치원 시청자 게시판에 “아역의 화장이 너무 진해보인다”는 의견도 올라왔다.
텔레비전 속 아동 메이크업 여부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것은 윤 씨뿐이 아니다. 어린 여성들이 화장을 하며 외모를 꾸미는 소위 ‘키즈메이크업’ 혹은 ‘키즈 뷰티’ 열풍과 함께 커지고 있다. 아이들이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외모지상주의를 답습하거나 고착화한 성역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유명인 가족이 운영하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8살인 자녀 A 씨가 메이크업을 하며 “살이 쪄서 고민”, “화장을 좀 하고 다녀야겠다”는 말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논란으로 해당 클립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 “성적 고정관념 학습될 수 있다는 점 고민해야”
베이비뉴스는 지난 5월 개편 이후 방송된 딩동댕유치원 방영분을 E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2020딩동댕유치원'에서 확인하고 해당 내용의 일부를 학계, 미디어 등의 전문가에게 전달해 어린이 출연자의 화장이 적합한 수준인지를 물었다.
전문가들도 여성에게 꾸밈이 강요되는 분위기를 아동 시기부터 학습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통상 방송 출연에 필요한 정도의 분장과 성인 여성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화장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아동기에서부터 여성의 외모에 대한 특정한 사회적 기준을 자연스럽게 습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은 “화장보다 의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 목적과 의미를 생각해서 출연자에게 성적 고정관념이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다만 우리 사회 자체가 꾸밈을 강요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어린이들만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아동 출연자의 화장 여부는 사회 전체가 같이 생각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학부모 시민단체는 아동 출연자에게 화장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비영리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서 혐오 차별 조장 미디어 아카이빙 프로젝트 ‘핑크노모어(Pink No More)’를 담당하는 활동가 강미정 씨는 “자연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가리지 말아달라”며 “양육자로서 딩동댕유치원을 시청하는 자녀가 ‘꾸밈에 대한 압력’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딩동댕유치원을 보며 자라는 만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며 “젠더감수성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프로그램을 제작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EBS는 ‘방송 촬영에 필요한 수준으로 화장을 했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15일 베이비뉴스와의 통화에서 EBS는 “(딩동댕유치원이) 어린이 프로그램인 만큼 아동출연자의 아이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리고, 화면에 선명하게 촬영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메이크업만을 했다”며 제작진의 입장을 전달했다.
EBS는 “아이섀도 등의 색조화장은 하지 않았고, 볼터치는 생기를 위해 혈색 정도를 표현했으며, 해당 출연자가 속눈썹 자체가 길고 진해 눈썹이 눈동자를 가리면 안 되기 때문에 고정을 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역할 고정관념을 의도해서 제작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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