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열린편집위원의 눈] 3년 새 사라진 민주당 대선 공약들

프로젝트

 

“20대와 21대 대선 공약을 통시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는 보도를 부탁드린다. 특히 민주당의 사회정책 공약 후퇴가 안타깝다.”

 

지난 5월 말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 나는 20대 대선 당시 거대 양당의 공약발표문 및 연설문 모음집 파일까지 건네며 이렇게 당부했다. 통시적 접근이 필요한 까닭은 두가지다. 불과 3년 만에 치러지는 대선인데다 민주당 후보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3년 새 역행한 분야의 공약은 현 시대정신에 맞게 진전시켜야 마땅하나, 실현되지 않은 기존 공약을 없애버리는 퇴보는 경계해야 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현재 공약만을 살피기에 바빴다. 내 당부가 무색하게도 한겨레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도리가 있는가. 직접 한줄 한줄 톺아볼 수밖에.

 

20대와 21대 대선의 민주당 공약집에 쓰인 단어의 빈도를 비교하면, ‘차별’은 58회에서 22회로, ‘평등’은 22회에서 11회로, ‘공정’은 326회에서 101회로 줄었다. 공약집 분량 자체가 10쪽가량 줄어든 걸 감안하더라도 방향성의 변화는 명료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천착하는 ‘다양’은 21대 공약집에 43번 등장한다. 그런데 그 쓰임이 이렇다. 생물 다양성, 사이버 보안기술 다양성, 병력 모집 방식 다양화, 양식 수산물 다양화, 다양한 금융 점포…. 내가 기대한 ‘다양’과는 매우 결이 다르다.

 

반면 20대 공약집에서는 ‘다양’을 69번 언급했다. 다양한 사회관계망 존중, 다양한 계층의 여성 권리 강화, 이에스지(ESG) 평가지표상 성별 다양성 항목 비중 확대, 혼인 외 독립·동거·비혼·이혼·미혼출산 등에 따른 다양한 주택 수요를 포괄하도록 주거 정책 개편, 주민참여예산 심사에 사회적 약자 및 지역·성·연령별 다양한 계층 참여, 친족가구 중심의 다양한 차별과 불이익을 발굴해 제도개선…. 내가 기대했던 ‘다양’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가족 다양성’의 실종이다. 공약집 한쪽에는 늘 ‘대상별 공약’ 파트가 있다. 3년 전 공약집의 16가지 대상 중 마지막 항목은 ‘다양한 가족’이었으나, 이번 공약집의 13가지 대상에서는 ‘다양한 가족’이 자취를 감췄다.

 

내용을 뜯어보면 더 가관이다. 3년 전 공약집에는 ‘연대관계등록제’ 도입이 있었다. ‘생활동반자법’ 내지는 프랑스 ‘팍스(PACS) 제도’의 축소판 격으로, 1인가구와 친밀한 관계 등이 돌봄·의료·장례 등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걸 골자로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대표일 때, 박홍근 원내대표가 법안을 발의하고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언급한 이 ‘연대관계등록제’를 민주당은 이번 대선 공약에서 끝내 제외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몸을 사릴 때, ‘지정돌봄인 등록제’라는 유사 공약을 내건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힘이었다.

 

우리 가족의 구성이 ‘혼인에 의한 부부와 혈연에 의한 자녀’, 즉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자녀가 모욕적인 언어·정서·성폭력을 당해 보호자로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참석한 게 불과 몇주 전 일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누군가의 숨통을 조여오는 현실 속에서 이 같은 공약의 퇴행은 실망을 넘어 좌절을 안긴다.

 

3년 새 없어진 공약은 이뿐만 아니다.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 기본법 제정’ 및 ‘피임·임신중지에 관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약의 실종은 6년 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된 낙태죄의 입법 공백을 계속 방치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정치영역의 성희롱·성폭력 대응을 위한 법제도 마련’의 실종은 그간 성범죄들에 대해 더는 반성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권자의 유능한 도구로서 훌륭한 행정을 펼칠 거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비상계엄 이래 보수정당의 궤멸로 민주당이 보수의 역할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인식에도 큰 이견은 없다. 다만 그것이 다양성·인권과 같은 가치를 저버려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걸 이 대통령 스스로가 가장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다차원적 소수자성이야말로 본인의 정체성이자 지지 기반임을 마음 깊이 각인하고, 수도 없이 언급해온 ‘억강부약 대동세상’ 여덟 자에 담긴 함의를 끝까지 지켜내길 기대한다.

 

더불어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과제를 내놓거든, 이번엔 또 무엇을 슬쩍 희석시켰는지 공약집과 꼼꼼히 비교 분석해 보도해주기를 한겨레에 거듭 당부한다.

 

[한겨레 |열린편집위원의 눈] 송지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기고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065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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