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학생인권조례지키기공동대책위원회] [성명] 교육부부터 책임을 다하라!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 철회하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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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부터 책임을 다하라!
-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 철회하라 

지난 7월 발생한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 이후 정부와 여당, 보수 교육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인권조례 사냥에 나섰다. 교사 충원, 학급 당 학생 수 감축, 업무 부담의 완화, 지원이 필요한 학생과 교사에 대한 대책 마련 요구는 외면하고,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대책으로 삼은 것이다. 지난 8월 윤대통령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개정을 주문한 이후 교육부는 학생인권을 실질적으로 후퇴시키는 생활지도 고시를 한 달만에 하달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11월 29일,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발표해 더욱 노골적으로 전국의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학교구성원에 대한 세밀한 고려도, 인권의 보장도 없는 책임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수언론도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이하 ‘책임조례안’이라 함)에 가세하여 ‘균형잃은 학생인권조례’라는 프레임을 연일 내세우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의 권리는 지나치게 강조된 반면 권리에 따른 책임은 경시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책임조례안’은 학생, 교사, 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균형적으로 담았다고 밝혔다. 우선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제4조를 보면 이미 자기 자신을 존중할 책임,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 책임, 정당한 학교 규범을 존중할 책임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지역의 조례도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도대체 어떤 책임을 원하는 것인가. 

인권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에 대해 그 정당성을 질문하고, 재정의해온 역사의 산물이다.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사회에서 책임은 침묵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 자라난다. 그러나 ‘책임조례안’의 책임은 질문을 삭제하고, 인권의 외침을 가로막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협력과 존중’이라는 자발적 책임의 언어를 ‘금지와 준수’라는 명령의 언어로 바꾸고, 기계적으로 각 구성원에게 6개의 권리와 6개의 책임을 부여한 예시안의 책임 조항에서 권리와 책임에 대한 교육부의 잘못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개인적 차원의 책임만 논하면서 학교구성원들의 고통을 만들어내고 방치한 시스템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교육 당국은 진짜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책임조례안’과 교육부야말로 인권이 말하는 책임을 가장 경시하고 있다.

또, ‘책임조례안’은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하여 다른 조례에 이 조례와 다른 규정이 있는 경우, 이 조례를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학생인권조례 무력화의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구체적인 학생인권 내용은 모두 삭제했다는 점이 교육부의 노골적인 의도를 보여준다. 학생이 학교에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의 자유, 개성을 실현할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같은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삭제한 이 조례안이 어떻게 학교구성원의 권리를 균형적으로 담았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러면서 교육감, 학교장, 교원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책임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말하는 학교구성원의 자리에 학생은 없다. 청소년-시민전국행동과 함께하는 많은 교사와 청소년-시민들은, 교사의 어려움을 핑계로 학생인권을 공격하고 학생·보호자의 질문을 모두 악성 민원으로 취급하려는 교육부의 태도에 분노한다.

이번 ‘책임조례안’을 비롯하여 학교구성원조례, 교육공동체조례, 교육인권조례 등 다양한 이름을 내걸고 나타나는 이 조례들은 말로는 ‘모두를 위한 조례’라고 하지만, 요란한 빈 수레일 뿐이다. 유사한 조례들이 학생인권만 후퇴시키고 교사 인권에도 실익이 없다는 점은 이미 인천, 전북의 사례에서 입증된 바 있다. 사회적 지위가 다른 구성원들을 기계적으로 묶어 실재하는 권력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불평등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보수 교육감들은 ‘모두를 위한 조례’의 허울만 붙잡고 있다. 이들이 수호하고자 하는 교육 공동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입시경쟁과 과도한 통제에 묶인 학생, 필요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독박교실에 내몰린 교사, 정당한 질문도 악성 민원 취급을 받는 학부모 모두가 고통에 신음하는 지금, 학교에 과연 공동체란 존재하는가. 사회는 학생, 교사, 학부모를 병렬하여 권리도, 책임도 1/n로 나누는 조례안을 만들 게 아니라, 학교구성원들이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진정 ‘모두’를 위하고자 한다면 학교구성원 각자가 처한 위치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구체적인 지원을 마련하라. 

현재 경기도와 전라북도는 기존의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거나 별도의 조례를 통해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고, 서울과 충청남도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교육부의 ‘책임조례안’ 발표가 후퇴의 명분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 자명하다. 학생인권을 보호해야 할 교육부가 앞장서 불난 데 부채질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학생인권의 보장을 요구받을 때는 지방자치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며 관여하지 않다가 학생인권조례를 후퇴시키기 위해서는 조례 예시안까지 마련해 내놓는 교육부의 이중잣대가 놀라울 따름이다.

엉뚱한 학생인권조례만 공격하는 동안, 과도한 업무와 독박교실과 같이 교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해답을 찾을 시간은 사라졌다.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은 ‘학교구성원 조례 예시안’을 철회하고 배포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교육부는 제대로 된 인권보장 계획을 수립하여 교육 당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라!

2023년 12월 1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개악저지 도민 공동대책위원회, 서울 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충남 청소년인권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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