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 <노키즈존 가고! 차별금지법 오라!>

 

1

보도자료

보도일시

2022. 05. 04. 수

담당

장하나 활동가

010-3693-3971

 

박민아 활동가

010-2499-4094

배포일시

2022. 05. 04. 수

총 12 매 (별첨 0건)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

 

<노키즈존 가고! 차별금지법 오라!>

 

 

■ 일시 : 2022년 5월 4일(수) 오전 11시

■ 장소 : 국회 정문 앞

■ 공동주최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정치하는엄마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 순서

- 오은선 활동가 (정치하는엄마들)

- 난다 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 김나단 어린이 (만 9세)

- 김한나 어린이 (만 6세)

- 남궁수진 활동가 (정치하는엄마들)

- 송지은 활동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 이지예 어린이 (만 8세)

- 박민아 활동가 (정치하는엄마들)

- 김희진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 미류 활동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단식 24일차)

- 기자회견문 낭독

■ 퍼포먼스 : ‘노키즈존 나빠요! 차별금지법 좋아요!’ 어린이 붓글씨로 대형 현수막 완성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가운데 아동・청소년인권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어린이차별철폐의 날을 선포했다. 이들은 노키즈존, 급식(충), 잼민이, ~린이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아동 혐오·차별을 제재하기 위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정치하는엄마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아동・청소년인권단체들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0주년 어린이날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노키즈존으로 대변되는 노골적이고 양성화 된 아동 차별을 법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와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국회에서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 4월 11일부터 24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사무국장은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낭독된 소년운동의 선언의 3개 기초 조항 중 첫 번째는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는 것인테, 100년이 지난 지금 방정환 선생이 ‘노키즈존’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 의문”이며 “허울 좋은 어린이날 100주년에 ‘어린이차별철폐의 날’을 선포하고 노키즈존, 급식(충) 등 혐오와 차별에 가차 없이 맞서 나가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발언문>

 

▶ 김나단(만 9세) 어린이 발언문

 

 1

저는 열 살 김나단입니다.

 

저는 노키즈존을 반대해요.

노키즈존은 어린이에게 차별입니다.

 

조용히 해야 하면 조용히 하자는 규칙을 써주세요.

노키즈존이라고 하지 마세요.

안전해야 하면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노키즈존이라고 써 붙이지 말고요.

 

우리 어린이도 규칙을 배우고 지킬 수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어른들도 규칙을 지키는 것.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아직 배우는 중이잖아요.

배우는 중인 어른들과 우리 어린이들이 모두 함께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들, 우리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를 나가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같은 어른들, 힘있는 어른들에게도 함께 규칙을 만들고 지키고,

서로 이해하자고 얘기하는 진짜 어른이 되어주세요.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만드신지 100년 된 오늘

2022년의 열 살 김나단 어린이가 어른들에게 외칩니다.

 

차별 대신 함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이상입니다.

 

 ▶ 김한나(만 6세) 어린이 발언문

 

1

 

저는 당촌초등학교 1학년 김한나입니다.

 

저는 노키즈존을 없애고 싶어요.

왜냐면 우리 아이들이 불편해요.

내가 어른이, 아니라고

내가 그냥 어린이라고

음식점 아니면 카페를 못들어가게 하면

난 으아아앙!!! 울고 싶어요.

 

어른들도 아이였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땐 노키즈존이 없었죠?

 

어린이들이 노키즈존을 배워서

나중에 어른들이 못들어 오게 할지도 몰라요.

우리에게 나쁜 걸 가르쳐주지 마세요.

 

노키즈존은 싫어요.

어린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마세요.

끝입니다.

 

 

▶ 이지예(만 8세) 어린이 발언문

 

1

 

안녕하세요. 3학년 이지예입니다.

어린이가 갈 수 없는 노키즈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같이 들어가게 해주세요.

엄마아빠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세요.

어린이도 들어가게 해주세요.

어린이도 예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어요.

예쁜 카페에서 음료수도 먹고 싶어요.

노키즈존을 없애주세요.

어른이들은 못 가는데 없는데

어린이는 왜 못가는 데가 있나요.

어린이를 조금 더 생각해주세요.

 

▶ 정치하는엄마들 오은선 활동가 발언문

 

2022년 5월 5일은 어린이날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방정환 선생은 이 땅에서 아동인권선언문을 발표했다. 방정환 선생이 발표한 아동인권선언문은 어린이를 위한 선언이지만 그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면 어린이를 포함한 다른 이의 권리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방정환 선생이 고심해서 제안한‘어린이’라는 말은 어떤 일에 미숙한 이들을 일컫는 말로 변질되어 폄하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어린이라는 존재는 존중받는 주체가 아니라 어딘가 미숙한 존재로 대상화되어 있다. 어린이는 열등하고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어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장애인에게, 여성에게, 이주민에게, 성소수자에게, 노인에게까지 모두가 연결된다.

 

방정환 선생은 100년 전‘어린이를 시혜적으로 베풀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어린이들을 완전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예우해야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어린이는 시혜의 대상이거나 어른들의 부속물이고, 누군가의 소유물이거나 미래의 꿈나무 취급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유엔이 정한 아동권리 협약에서도‘성별, 나이, 종교, 인종, 국적, 재산, 능력,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배려를 받기는커녕 차별을 받고 있다.

 

이미 어린이·청소년에게 유해한 시설은 별도로 관리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명확한 이유 없이 운영 편의만을 위해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다. 가게에서 뜨거운 음식을 나를 때 사고가 생길 수 있다, 라는 이유라면 따뜻한 음료를 판매하는 모든 카페나 찌개를 파는 모든 음식점은 노키즈존이 되어야 한다. 개념 없는 양육자를 배제하기 위해 노키즈존을 만들었다는 발상도 양육자라는 존재가 언제든지 무상식한 행동을 하고 불편함을 초래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존재로 억압시키며 상황적인 처벌을 가한다.

 

특정집단을 배제하는 행위는 차별이다. 노키즈존은 어린이를 배제하는 일이며 이는 명백한 차별이다. 안전을 이유로 드는 곳은 위험한 요소가 있다면 제거하여 잘 운영하고 관리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마땅하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도‘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판단했지만 그 효력은 무기력했다. 오히려 노키즈존은 확산되었고 매장의 일부 구역에 아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도 여전하다. 노키즈존은 어린이와 몰지각한 부모. 특히 특정한 성별을 향한 손가락질, 차별과 혐오로 이어졌다.

 

어린이와 양육자는 어떤 공간에서도 나이에 따른 차별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모두가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길에 휠체어가 지나가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에 어떤 명사가 들어와도 차별받지 않고 오롯이 수용하는 곳에서 함께 일상을 보내고 싶다.

 

100년 전 방정환 선생이 뜻한 바대로 어린이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세상에 살길 원한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의 인권을 높이는 일을 노동해방, 더 나아가 인간해방과 같은 차원으로 여겨 어린이날 첫 기념일을 5월 1일로 정했다. 모든 어린이와 양육자, 노인, 여성, 흑인, 아시아인, 유대인, 이민자, 성소수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랑받고 존중받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런 세상이어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오롯이 살 수 있다. 누군가의 인권이 올라가면 나의 인권도 상보적으로 함께 상승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모든 차별 또한 마찬가지로 연결되어 있다. 100년 전의 선언이 유효한지 되물어야 할 때다.

 

 

▶ 난다 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발언문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활동하는 난다라고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자주 가던 단골 가게가 있었는데요. 애정하던 곳이었어서 거기가 작년쯤 문을 닫았다가 다시 재오픈을 한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근데 이번에 다시 문을 열면서 노키즈존이라고 공지가 올라온 거예요. 원래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저도 댓글을 남기고, 보니까 다른 분들도 "노키즈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잘못 본 거죠?", "왜 노키즈존인가요?" 이런 문의, 항의를 남기셨더라고요. 그랬더니 그 사장님이 "가게가 너무 좁고 내부 정리 중이라서 그렇다, 다시 공지드리겠다" 이렇게 답변을 하셨어요. 근데 이런 생각이 들었죠. 만약 좁아서 그런 거라면, 오히려 몸집이 작은 사람, 어린이 분들이 더 잘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닐까? 나중에 사장님이 다시 공지를 올리셨는데 '노 배드 패런츠존'으로 바꾸었다고, 확대해석 하지 말아달라, 어린이를 배제하려는 게 아니다, 속상하다, 이렇게 올리셨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도 속상했죠. 뭔가 주의가 필요하고 이런 부분은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주세요, 라고 공지하는 것과 아예 존재 자체를 거부하며 입장하지 말라고 써붙이는 건 다른 건데. 왜 누군가를 배제하고 쫓아내는 게 이렇게 쉬운 선택이 되었을까. 그리고 ‘노배드패런츠’라고 하면서 마치 일부의, 소위 말하는 '진상 손님'의 입장을 거부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노배드패런츠’라고 딱 '부모'만 '나쁜 부모'라고 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참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또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를 접했는데요. 제가 아는 분의 자녀 분이 중학생인데 그 학생분의 친구가 학교에서 벌점을 받았다는 거예요. 벌점을 받은 이유는 '타반 출입금지' 규정을 어겨서였습니다. 상황을 알아보니, 다른 반 학생에게 담요를 빌렸다가 다시 돌려주려고 쉬는 시간에 다른 반에 들어갔다가 걸려서, 담요를 빌린 사람, 빌려준 사람 둘 다 벌점을 받았다는 거죠. 이게 벌 받을 일일까요? 왜 학교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날까요? ‘다른 반 출입금지’라는 규칙은 왜 있는 걸까요?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어떤 기준치에서 벗어난, 다른 사람-다른 존재를 쫓아내는 데 너무 익숙한 것 아닐까.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런 규칙 있었거든요. 솔직히 왜 규제하는지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규칙들 천지였던 것 같아요. 또 특정 과목은 수준 별 수업이라고 해서 시험 성적에 따라서 상중하 이렇게 교실을 나눠서 배치하기도 하고... 어쩌면 그런 학교의 풍경이 이 사회의 풍경과도 같다는 생각. 그래서 난민, 이주민,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등 소수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걸 고민하는 대신 그냥 배제해버리는 사회인 거 아닐까. 그런 사회에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온 것 아닐까.

 

최근 이런 일들을 접하면서 또 자연스럽게 차별금지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노키즈존 문제 같은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17년에 나이 차별이고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고 시정 권고를 낸 적 있었고, 2019년에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라는 이야기를 노키즈존 문제를 지적하면서 했어요. 한국의 전반적인 어린이.청소년인권 상황을 살펴보다가 그렇게 이야기한 거죠. 그래서 한국의 청소년인권 보장을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발표합니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의 차별 문제, 다양한 정체성이나 삶의 형태 등이 인정되지 않고 획일적인 모습을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 학업성취도 결과 즉 시험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는 것 등등 모두 차별이다, 이런 차별을 조금이라도 시정할 수 있도록 지금 한국 사회에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그동안 한국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요? 무시했죠. 한번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 관련 개선해야 하는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는 권고들을 한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습니다.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미류 활동가가 쓴 글을 보면서 마음에 많이 와닿았던 게 있는데요. “차별받는 모두에게 국가는 사과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존엄을 깎아내려 무례함과 폭력에 방치한 상황에 대해. 누구도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으로부터 누군가를 배제해온 역사에 대해.” 라는 구절이었어요. 이 폭력과 혐오와 차별에 익숙해지게끔 그냥 내버려두었던 것에 대해서 국가는 사과하라고. 노키즈존 문제도 단골 가게 사장님과 손님인 개인이 대립하게 되고, 서로 막 속상하고 그렇잖아요. 왜 우리가 싸워야 하나.

 

어리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어떤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남들과 다른 꿈을 꾼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해지고 존중받지 못했던, 때로는 아주 직접적인 폭력을 겪어야만 했던 그런 시간들을 거쳐온 우리 모두에게, 저 또한 국가가 대충 얼버무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때는 몰랐더라도 지금에 와서는 그건 문제였고 잘못이었다, 제대로 짚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바뀔 수 있고 그래야 한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일은 어린이날 100주년입니다. 100년 전 어린이날을 선언하며 어린 사람을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라고 요구했던 날입니다. 그중 이런 구호가 있는데요, “장가와 시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 저는 이 구호가 오늘날에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쫓아내지 마시고, 경쟁 강요하지 마시고, 그저 사람답게만 대하라"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바로 평등이 뭔지, 평등을 제대로 배워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입니다. 국가로부터, 이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자고, 그래서 이제는 정말 평등의 봄을 마음껏 맞이하자고, 여기 계신 분들과 다시 한번 다짐을 나누고 싶습니다. 발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지은 활동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발언문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 송지은입니다. 내일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하여 아동 및 청소년을 향한 혐오·차별 철폐에 대한 선언에 연대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5월 5일이 ‘어린이 날’이라는 것은, 아마 어느 기념일보다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린이였고 누군가는 어린이이기 때문이겠지요. 누구나 한 시기동안 경험하는 이 정체성은, 사실 나이가 듦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고스란히 사람의 한 부분으로 남아 한 사람을 구성합니다. 그렇기에 어린이 청소년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는, ‘노키즈존’의 사회는, 결국은 모든 사람을 혐오하고 차별하고자 하는 사회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린이 청소년 혐오차별 철폐를 선언하는 것은 지금 어린이 청소년인 사람들이 곧 우리 자신이자, 우리의 동료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 어디에나, 동료 시민인 청소년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보통 짐작하시는 것보다 더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여느 어린이들과 같이 자신을 이루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정체성을 누구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끼고, 고민하며, 때로는 필요한 도움을 찾고 스스로 계획하며 나답게 살고자 합니다. 그저 나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살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성소수자가 되기엔 너무 어리다’ 같은, 말이 안되는 말을 가족, 학교, 여기 국회에서도 너무 쉽게 합니다. 어린 사람을 동료시민이 아닌 아랫사람으로 만드는 ‘너무 어리다’라는 말은, 청소년의 정치적 참여권을 빼앗기도, 청소년을 보호의 명목으로 통제하기도 하는 손쉬운 명목입니다. 혐오가 내재된 차별발언입니다. 성숙의 기준이 무언지 모르겠으나, 내가 누구인지를 탐색하는데에 너무나 미숙한 쪽은 오히려 누구입니까?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거부하는 하나의 구역 같다고 느낍니다. 학생인권조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 학생들이 성소수자가 되는걸 보호하기 위해서’란 말을 할때 특히 그렇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어린이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는 거부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미 100년전 어린이날에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다”는 선언이 어린이들에 의해 외쳐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차별에 맞서 존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여정은 존엄합니다. 혐오와 폭력, 방임을 피해 탈가정을 결심할 때 그는 존엄합니다.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에 반대하고, 권리로서의 보호를 요구하는 외침은 존엄합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어린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한, 혐오와 차별은 결국은 철폐될 것입니다. 어린이 레즈비언 청소년 게이 중학생 트랜스젠더와 탈가정한 바이섹슈얼, 성별 이분법을 가로지르며 탈학교한 청소년들, 무성애자, 인터섹스, hiv감염인, 이주난민과 장애 청소년 모두에게 평등하고 존엄한 어린이 날을 축하합시다.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차별금지법 제정합시다.

혐오와 차별을 없애는 방법 외에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없습니다.

 

김희진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발언문

 

아동은 성인의 보호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의존성과 약함을 이유로 아동의 인권문제는 다른 이슈보다 경시되어 왔습니다. 아동의 인권은 성인의 관점에서 옳고 그름이 정해지고, 강요되었습니다. 국제사회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통해 ‘오로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기 쉽지만, 성인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 마땅 한 아동의 권리’를 확인하게 된 이유입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할 아동의 기본적 권리 보장은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사회집단의 목적에도 부합합니다. 나의 권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타인의 권리를 알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나의 권리를 존중받는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타인의 권리를 배려할 것을 당연히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노키즈존은 아동의 존재 자체를 문제로 삼기에 차별입니다. 아이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 적극 대처하고, 필요한 경우 약속된 사회질서와 규범을 알려주는 등 아이를 살피는 모든 역할은 부모와, 영업주, 그리고 시민 모두의 역할입니다.

 

어린이청소년에게 건방지다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어른들이 좀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는 건 좀 더 오래 살았기 때문일 뿐, 태생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린이청소년에게 예의없다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어른들은 언제라도 어린이청소년에게 예를 갖춰 대우하는 태도를 갖췄습니까? 예의는 누구 한 사람의 의무가 아닌, 상호간의 배려입니다. 그리고 권위는 억압과 강요가 아닌, 더 약한 이들을 지킬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 힘을 갖춘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한 사회구성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동은 존재 자체로 시민이며, 권력자의 권위는 아동에게서도 위임받은 것입니다.

어린이청소년은 시끄럽고 폐를 끼친다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시끄러운 행동은 아이들의 특성이 아닙니다. 주위를 불편하게 하는 행위는 아이여서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고, 이때에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제재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째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차단시키는 결정부터 우선합니까? 문 앞에서 거부당하는 불쾌감은 어른이나 아동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모두 어린이 청소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십시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충분히 존중받았나요?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차별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체벌은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훈육을 명목으로 직간접적인 폭력이 가정과 학교에서 나타납니다.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입양을 보내는 것이 아이를 위해 더 낫다는, 심지어 해외입양을 적극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국회에서 당당히 발언됩니다. 스쿨미투 이후로도 가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 처분이 흐지부지된 채 학교의 고인 물은 그대로 고여있습니다. 국가는 현행법상 명백하게 불법인 베이비박스를 방치한 채, 아동유기를 방조하고 있습니다. 노키즈존은 찬성과 반대 의견이 대립하며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동인권의 실현이란 아동의 입장에서 숙고되고 결정되어야 하며, 아동 당사자의 의견은 사안의 판단에 필수적입니다. 아동의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아울러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지를 찾고, 설혹 그 결정이 아동에게 예기치 못한 위해를 가져온다면 신속하게 대안을 찾으려는 준비도 필요합니다.

어린이날을 처음 선포하던 때에는 5월 1일 노동절로 지정하려 했었다 합니다. 어린이날의 취지는 각종 억압으로부터 아동을 해방하는 것이요, 아동의 온전한 권리주채성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동은 현재의 시민이자, 미래의 더 오랜 날들을 시민으로 살아갈 사람입니다. 아동보다 앞서 지구환경을 쓰고 있는 어른은 아동에게서 이 사회를 빌려쓰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빌려쓰는 이 사회를 어떻게 써야 하겠습니까? 지금 최대의 이익을 달성하려는 것은 빌려쓴 자들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 이익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차별의 적극적 실천입니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그 가치를 실정법과 도덕규범이 더불어 설명하고 지지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동의 온전한 존재가 인정되고 아동인권이 실현되는 변화가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미류 활동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단식 24일차) 발언문

 

차별금지법은 한 사회가 시민들에게 거절 당하는 경험을 만들어 줄 것이냐, 환대받는 경험을 만들어 줄 것이냐를 가르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키즈존이라고 써붙이고 아이라서 들어갈 수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이라서 안 되나봐. 건물에 경사로가 없고 계단턱이 있어서, 아 나는 장애인이라서 들어갈 수 없나봐. 채용성차별로 번번히 떨아지는 여성들이 나는 여성이라서 들어갈 수 없나봐. 누구와 결혼하든 상관없지만 동성이라 결혼식장을 빌려줄 수 없다는 말에 성소수자느 어쩔 수 없나봐 이런 거절당하는 경험들을 우리는 어떻게 환대하고 환대받는 경험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차별인지를 알고, 그것을 바꿀 방법을 사회가 함께 시작할 때 가능합니다. 이걸 미루면 거절은 혐오가 됩니다. 이준석이 말하듯이 장애인들의 이동권 요구는 시민의 발을 볼모를 잡는 폐혜가 될 뿐이죠. 비시민이 됩니다. 어린이들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마치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차도로 뛰어드는 위험한 장난이라는 철부지처럼 혐오되고. 여성은 어떻게든 남성에게 무고를 씌워서 사람 잡으려고 하는 그런 괴물이 되어 버립니다. 해결책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될 때 15년간 한국사회가 이 혐오와 차별에 휩싸이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희가 단식농성을 한 이후로 매일같이 평등법 반대하는 피켓팅을 봅니다. 피켓에 다양한 내용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어린이와 여성을 괴롭히는 차별금지법 반대한다’ 이게 말이 될까요? 어린이와 여성들이 요구하는 차별금지법입니다. 그런데 그 말에 국회 안에 앉아있는 국회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반대 의견이 있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어렵다는 핑계를 댈 수 있나요. 여기 나와서 얘기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정말 고개 끄덕일 자신 있는지. 여성과 어린이를 괴롭혀서 우리가 천천히 만들겠다 국민들 앞에 말할 수 있는지. 없을 겁니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반대 여론이 있어서 법제정이 어렵다고 핑계를 댈 수 있나요. 어린이평등의 날을 쟁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힘이 나고 감동이고 한데요.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에이즈의 날을 에이즈감염인인권의 날로 선포했던 우리의 투쟁들이 있습니다. 그 뜻을 이어받아서 내년에는 차별금지법 있는 봄에 어린이 차별 철폐의 날 기념 어린이 집회를 함께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평등의 봄 쟁취합시다. 고맙습니다!

 

 

 


 

 

<기자회견문>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

노키즈존 가고! 차별금지법 오라!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제3호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재화ㆍ용역ㆍ교통수단ㆍ상업시설ㆍ토지ㆍ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ㆍ배제ㆍ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이후 차례로 채택된 국제인권규범을 관통하는 원칙은 모든 사람에 대한 차별금지, 그로 인한 권리의 보장이다.

 

즉 노키즈존은 현행법과 국제인권규범이 금지한 명백한 아동 차별이다. 2017년 9월 25일 국가인권위 전원회의는 13세 이하 아동의 출입을 제한한 제주도 소재 식당에 대해 “(노키즈존은) 아동에 대한 배제뿐 아니라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에 대한 배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모든 아동과 그 보호자가 사업주나 다른 이용자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용자가 아동과 보호자에 국한되는 것 또한 아니다. 따라서 아동과 보호자의 식당 이용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일부의 사례를 객관적, 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화한 것”이라며 “향후 피진정인이 운영하는 식당의 이용 대상에서 13세 이하 아동을 일률적으로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인권위법에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대한 시정명령권과 벌칙 조항이 없어 노키즈존은 날로 확산되고 있으며, 급식(충), 잼민이, ~린이 등 아동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는 추세다.😔특히 발달장애아동, 난민아동, 이주배경아동, 빈민아동, 성소수자아동 등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처지에 놓인 아동들은 출입을 금지당하거나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복합차별을 겪고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욱 시급하다.

 

201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31조 휴식, 여가, 놀이, 오락 활동, 문화 활동, 예술에 관한 아동 권리에 대한 일반논평 제17호’에서 아동은 사회적 배제ㆍ편견 또는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데, 세계 곳곳의 공공장소에 대한 상업화가 심화되면서 아동에 대한 관용이 줄어들고, 공동체나 공원ㆍ쇼핑몰 등에 대한 아동의 출입 제한 조치로 인해 아동은 “문젯거리, 문제아”라는 인식이 형성됨이 우려되며, 이러한 아동에 대한 배제는 아동이 시민으로서 성장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즉 노키즈존은 단지 상업시설을 이용할 권리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노키즈존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은 아동이 민주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권자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저해한다.

 

혐오는 혐오를 낳기 때문이다. 2017년 인권위 권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반성 없이 노키즈존을 용인한 결과, 노중2존ㆍ노중년존ㆍ노시니어존까지 ‘노○○존’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어린이ㆍ청소년ㆍ노인ㆍ엄마ㆍ지방시민ㆍ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벌레에 빗대 ‘○○충(蟲)’이라 부르는 등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혐오사회가 도래했다. 2006년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무려 17년 동안 평등사회를 유예한 대한민국 국회의 책임이 가장 크다. 노키즈존을 찬성과 반대의 대상으로 다루는 언론도 혐오사회를 이끈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혐오와 차별은 결코 찬반의 대상이 아니다.

 

1960년 2월 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로의 한 백인전용 식당에 4명의 흑인청년이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주문은 거절당했으나 그들은 식당을 떠나지 았않다. 욕설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에도 같은 식당을 찾아갔고, 점차 더 많은 흑인들이 이 대열에 동참하여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의 대표적 시민 불복종, 비폭력 직접행동인 싯인 운동(Sit-in Movement)으로 발전했다. 이 운동은 남부 전역 80여개 도시로 확산되어 1961년까지 7만 여명의 시민들이 동참했고 아칸소, 메릴랜드,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등지에서 인종분리법을 없앴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을 선포하는 우리는 노키즈존을 포함한 모든 노○○존에 반대하고, 아동·청소년 뿐 아니라 모두가 존재자체로 존중받는 평등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며, 혐오가 혐오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 손으로 반드시 끊을 것이다.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히 누리고 있는 권리들은 대부분 인권운동가들의 피와 땀으로 얻어진 것이다. 오늘 단식농성 24일차에 접어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미류 활동가, 이종걸 활동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1년 후 101주년 어린이날은 ‘노키즈존 없는 사회,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에서 맞을 수 있도록 우리도 차별에 맞서 부단히 행동할 것을 다짐한다.

 

2022년 5월 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정치하는엄마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더 많은 사진은 아래 구글드라이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8P3V8rPF_dDKtvhGvc7qETk30pcOkUZ…

 


 

[첨부 1. 기자회견 현장 사진]

 

 

 

1

 

발언하는 이지예 어린이

 

1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노키즈존을 없애요!” 피켓을 든 이지예 어린이

1

 

발언하는 김나단 어린이

 

1

발언하는 김한나 어린이

 

1

 

<노키즈존 나빠요! 차별금지법 좋아요!> 붓글씨 퍼포먼스 중인 김나단(만 9세), 김한나(만 6세), 이지예(만 8세) 어린이들

 


[첨부 2. 기자회견 유뷰트 중계]

 

 

 

날짜
종료 날짜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