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박원순 사건 이후 1년, 여성운동을 묻다] “여연 해체론 나올 줄 알았는데…오히려 더 강한 연대 필요성 공감”

 

여성단체연합 혁신위 권김현영·권수현 공동위원장 인터뷰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왼쪽)와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안에 대해 지난 17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br />혁신위원회는 혁신안을 발표하며 여성연합 전·현 대표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 지원정보가 유출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여성연합 회원단체에 다시 한번 사과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왼쪽)와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안에 대해 지난 17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혁신위원회는 혁신안을 발표하며 여성연합 전·현 대표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 지원정보가 유출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여성연합 회원단체에 다시 한번 사과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그 사건은 한동안 이름을 얻지 못했다. ‘그 사건’ ‘7월 사건’ 등으로 애매하게 불리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나서야 정확한 이름이 생겼다. ‘김영순 여성연합 대표-남인순 국회의원(여성연합 전 대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정보 유출 사건.’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대표가 지난해 7월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가 여성단체에 지원을 요청한 사실을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유출하고, 남 의원이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서울시장 젠더특보에게 연락한 사건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30일 이런 내용을 담은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7개 지부와 27개 회원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가장 대표적인 여성운동단체 연합조직인 여연은 큰 비판에 휩싸였고, 여성운동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여연은 지난 3월 외부위원들이 포함된 혁신위원회를 만들고 5개월 동안 논의한 끝에 7월29일 혁신안을 발표했다. 여연은 달라질 수 있을까. 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와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를 만나 혁신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고민을 들어봤다.

 

▲혁신위 구성은

외부인사 5명 포함해 모두 18명
연령·연차·지역 다양하게 고려
작년 여성의 날 행사 포기하고 출범

 

- 위원장을 맡기까지 고민이 컸을 것 같습니다. 혁신위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권수현(이하 수) = 여연 이사회가 이 사건을 포함해 여연 전체에 대한 점검과 평가,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혁신위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총회를 통해 승인받았어요. 혁신위 구성원은 대표 중심이 아닌 활동가 중심으로 하고, 내·외부 인사가 혼합된 형태로 연령과 연차, 지역 등을 고려해 구성했어요. 현재 여연을 향한 비판 중에 586세대에 대한 문제의식도 존재했기 때문에 연령대를 좀 낮췄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두 위원장은 40대다.) 여연 소속 단위 중에선 제가 대표로 있는 여·세·연에서 가장 먼저 사과와 반성을 담은 성명을 냈는데 그래서 혁신위원으로 추천받았습니다. 외부위원 중에선 권김현영 선생님이 여연에 대해 애정이 담긴 비판을 가장 많이 해주신 분이어서 제안을 했죠.

권김현영(이하 현) = 여연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여성운동 연합조직인데 이 사건으로 이렇게 망가지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살려야 하고 혹시 해체를 하더라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회의 이틀 전이 세계여성의날이었는데, 이번에 여연이 처음으로 여성의날 행사를 안 했어요. 내부에선 큰 사건이었죠. 도저히 여연이 행사를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봤고, 그 대신 혁신위를 출범한 거예요.

(혁신위는 두 위원장을 포함해 18명으로 구성됐다. 외부위원이 5명 포함됐고, 지역연합에서 10명이 참석했다. 연령대도 20대 1명, 30대 8명, 40대 7명, 50대 2명 등으로 구성됐다.)

 

- 첫 회의는 어땠나요.

현 = (영등포) 미래센터 지하에 있는 회의실에서 시작했어요. 굉장한 긴장감이 돌았죠. 우선 룰을 정했어요. 모든 회의 내용은 구글문서를 활용해 정리하고, 회의 때 충분한 발언을 하지 못한 사람은 구글문서에 추가한다. 회의 때 못한 얘기가 있다면 문서에 추가하고 같이 다시 읽고 회의록을 확정하는 식으로 했어요. 일부 사람이 발언을 독점하지 않도록 한 거죠. 아주 어렵고 예민한 과정이었어요. 10회 회의는 만나서 했고, 코로나19가 4단계로 상향되면서 11회차 마지막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했어요. 오전 11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2시에 끝난 날도 있었어요.

 

여성연합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권김현영 대표(왼쪽)와 권수현 대표는 공동혁신위원장을 맡아 5개월 동안 혁신위원회를 이끌었다. 우철훈 선임기자

여성연합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권김현영 대표(왼쪽)와 권수현 대표는 공동혁신위원장을 맡아 5개월 동안 혁신위원회를 이끌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영순·남인순에 대한 평가는

피해자 정보 유출·2차 가해 방조
잘못한 사람 기억하게 하기 위해
두 사람 이름 넣어 사건 명명

 

- 김 대표와 남 의원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사건의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현 = 실망스러운 일이었다는 평가였습니다. 배신감이 들었다는 표현도 나왔고요. 피해자 지원 연대를 논의할 때 가해자 측에 정보가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건 기본이잖아요. 김 대표는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했어야 했는데 어떻게 그런 경각심이 들지 않았을까 의문이죠. 남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젠더폭력근절대책TF단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내 지지자들이 쓴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을 통해 사실상 2차 가해를 방조한 결과를 냈다고 평가했어요. 사건의 이름과 관련해선 여러 안이 있었어요. 이름을 다 빼고 ‘성폭력 피해자 정보 유출사건’으로 하자는 안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책임이 불분명해지는 거죠. 잘못한 사람의 이름이 기억되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고, 또 여연의 전·현 대표로서 두 사람의 관계성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봤어요.

수 = 남 의원이 갖고 있는 여성운동의 자산은 남 의원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한 많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결정적인 순간에 여성운동의 공동자산을 왜곡해버렸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 남 의원의 경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여연 활동이었어요. 개인적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조직적 차원의 문제, 즉 여연 출신이 정치인이 됐을 때 여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원칙을 세우지 않고 관계를 맺어온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여연 전·현직 대표라는 부분을 넣는 것이 정확한 사건 명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운동이 권력이 됐다는데?

특정세대 네트워크 권력화가 문제
활동가·정치인 선순환 구조 필요
정치생명 걸고 목소리 낼 정치인
지금 국회에선 기대하기 힘들어

 

- 여성정치세력화 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도 필요했죠.

 

수 = 남 의원의 행보를 보면서 여성운동을 한 의원이라도 남성 정치와 네트워크를 경유하지 않고 정치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바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페미니즘 관점에 기초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지금 국회에 있는 여성 정치인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현 = 지금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억울한 면도 많아요. 여성운동이 권력이 됐다고 하는데 현장에선 ‘대체 누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남 의원을 비롯해서 정치인들을 직접 알지도 못해요. 김 대표가 그랬던 건 남 의원과 90년대부터 같이 활동했기 때문이에요. 오래 함께 활동한 ‘586 언니들’ 그룹이 있는 거죠. 일상적으로 소통하던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고,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런 것들이 실제로 인적 네트워크가 돼서 한국 사회를 움직이잖아요. 그 인적 네트워크 속에 이후 세대의 여성운동가들은 들어갈 수가 없어요. 특정 세대 네트워크의 권력화 과정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었고, 실은 이 사건 이전에도 있었지만 말하지 못한 거죠. 안에서 문제가 될 때마다 ‘별거 아니다’ ‘개인적 관계일 뿐이다’라고 넘어갔는데 이 사건이 터지면서 도저히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예요. 가장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터진 거죠.

 

“여연 해체론 나올 줄 알았는데…오히려 더 강한 연대 필요성 공감”이미지 크게 보기

 

- 그래서 혁신안에 ‘정치 네트워킹 원칙’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거군요.

 

수 = 정부와 시민사회 간 관계에 있어 기본은 협력과 견제이고 협력과 견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연 출신 정치인이라면, 더욱 더 긴장감을 갖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 정치 내에서 젠더의제를 다룰 수 있는 의원이 거의 부재하다보니 여성단체 출신 정치인들과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고, 의제를 입법화하는 데 집중하다보니 관계 맺기 원칙을 마련하지 못하고 활동해왔어요. 이런 점에서 ‘유출사건’은 예견된 결과인 측면도 있다고 봐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원칙을 만들고 여연 구성원들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현 = 여성활동가들이 정치를 하고 그 정치가 모두의 몫이 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예요. 조선희 정의당 시의원은 인천 여성회 출신으로 정치인이 됐고 지금도 협력해 나가면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장하나씨도 민주당 비례대표 이후에 ‘정치하는 엄마들’을 만들고, 거기서 핵심활동가들을 키워서 다시 비례의원으로 추천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게 됐어요. 상황과 목적에 맞는 정치 네트워크 원칙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이에요.

(혁신안은 현행 3인 이내인 공동대표를 13인 체제(지역별 대표, 회원단체 대표, 상임대표 등)로 확대하고 이사회를 개편하는 안을 담았다. 공동대표를 집단체제로 바꾸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의 논의가 필요했다. 연차별·세대별 활동가 모임을 활성화한다는 내용도 있다. 닫히고 고여 있다는 평가를 받는 조직을 혁신해야 한다는 고민이 담긴 결과다.)

 

▲어떤 혁신안 나왔나

그동안의 서울 중심 체제에 반성
13인 공동대표 체제 혁신안 내놔
성소수자 보호 위한 방안도 담아

 

- 혁신안을 보면 현재 여성운동이 가진 한계에 대한 고민도 보입니다. 현행법이 보호해주지 않는 여성들, 성소수자들의 문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도 담겼습니다.

 

현 = (대학) 수업에서 만난 스무 살 친구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유치하다’고 했어요. 맨날 어그로(관심을 끌려고 하는 부정적 행위)에나 끌려다니고 반응하는 걸 보면 언론이나 여성운동에서 얘기하는 페미니즘의 이야기들이 다 너무 유치하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정말 얼굴이 뜨거워졌어요. 그랬겠다 싶었죠. ODA(공적개발원조) 지원을 받던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가가 됐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성평등 관련 법안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현실에서 여성들의 삶은 왜 나아지지 않는가. 너무 큰 간극이 생겨버린 거죠. 1995년에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논의됐던 건 ‘성평등기본법’이었어요. 그런데 충분한 논의 없이 2015년에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됐죠. 양성평등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거잖아요. 정부의 정책을 보세요.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국가의 정책이라는 것이 ‘강제적 이성애 제도’가 됐어요. 여성이 출산하는 몸이 아니면 차별해도 된다는 것을 노골적인 국가정책으로 얘기하잖아요. 성평등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결과 우리 모두가 이런 취급을 당하게 된 거예요. 여성운동도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지역의 상황은 또 다르거든요. 혁신위 회의를 하면서 지역에서 오래 일한 활동가분들이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어요. 목소리를 더 잘게 쪼개고 쪼개진 목소리들에 힘을 줘야죠. 이런 이야기들이 여연 같은 조직을 통해 나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수 = 많은 시민단체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는데 여성단체들 또한 재정구조가 탄탄하지 못하고, 활동가들을 키우고 새로운 활동가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여연에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외부환경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재정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이것 또한 여연에 주어진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해요. 혁신위를 시작할 때 ‘여연 해체’ 이야기도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연합체로서 여연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혁신위 위원들이 정말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주셔서 그 모습에 자극도 받고 힘도 얻을 수 있었어요. 혁신위 과정이 ‘정치적 공유지로서 페미니즘 운동’을 확장하는 과정이었다고 보고, 이후 혁신안 실행 과정도 그렇게 진행되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혁신위원들이 느꼈던 생동하는 연대와 협력의 감정들이 공유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경향신문/장은교 소통젠더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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