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사장님 딸이라면 이곳에서 재우겠습니까 -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전

사장님 딸이라면 이곳에서 재우겠습니까

2021.04.25 08:00 입력

코리안 드림의 현주소,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전’

찢어진 비닐벽 안으로 가건물 숙소가 보입니다.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섹 알 마문·정소희 감독)’에 나온 경기 포천의 한 이주노동자 기숙사입니다. 이처럼 비닐하우스나 스티로폼 가벽 건물·컨테이너로 얼기설기 지은 ‘집 아닌 집’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추위와 더위에 취약하며, 화재라도 났다간 대형 참사로 번지기 쉽습니다. 위생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찢어진 비닐벽 안으로 가건물 숙소가 보입니다.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섹 알 마문·정소희 감독)’에 나온 경기 포천의 한 이주노동자 기숙사입니다. 이처럼 비닐하우스나 스티로폼 가벽 건물·컨테이너로 얼기설기 지은 ‘집 아닌 집’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가 많습니다. 추위와 더위에 취약하며, 화재라도 났다간 대형 참사로 번지기 쉽습니다. 위생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해 지은 건물.”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집’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집은 추위도 더위도 비바람도 막아주지 못합니다. 구멍 뚫린 비닐하우스와 스티로폼 판넬 가건물, 천으로 벽을 두른 야외화장실…. 냉·난방이나 환기, 채광 같은 건 이들에게 아득히 먼 얘기입니다. 겨울엔 코끝까지 추위를 덮고 여름엔 폭염에 시름하면서 ‘코리안 드림’은 오늘도 불안한 한뎃잠을 잡니다.

이주노동자 숙소의 열악한 환경을 고발하는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전’ 온라인 전시가 25일 열렸습니다. 이주노동희망센터·이주노동자평등연대·이주노조 등 전국의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지난 14일부터 서울 각지를 돌며 오프라인 전시도 열고 있습니다(관련기사[금주의 B컷]“사장님은 여기서 살 수 있나요?” 사진을 통해 묻는 이주노동자들). 이날 열린 온라인 전시는 오프라인 전시보다 더 많은 사진을 시민들이 편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마련됐습니다. 사진전에 올라온 사진 일부를 이야기와 함께 소개합니다.

■배수로 위에 살라고요?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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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용 배수로 위에 아무렇게나 얹은 컨테이너가 위태로워 보입니다. 최소한의 성의도 인간적인 존중도 없는 저곳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3명이 살던 경남 밀양 한 깻잎농장의 기숙사입니다. 냉·난방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 화장실을 쓰려면 약 100m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는데요. 이런 집을 기숙사라고 제공한 농장주는 월세 20여만원을 꼬박꼬박 받아갔다고 합니다. 올해 초까지 여기서 지냈던 이주노동자 A씨는 “겨울에 난방도 안 되고 도저히 여기서 일을 못하겠다”며 그만뒀습니다.

■개집 옆에 얼기설기 지어둔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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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철골과 슬레이트, 스티로폼 벽으로 얼기설기 만든 ‘저것’의 정체는 뭘까요? 건물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이곳은 무려 ‘남녀공용화장실’입니다. 경기 포천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남녀 이주노동자 6명이 이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많은 사업주들이 비용 등을 이유로 숙소 안에 화장실을 두지 않고 저런 야외화장실을 만들곤 하는데요. 이런 시설에서는 양변기 같은 건 기대하기 힘들고, 세면도 어렵습니다. 사진에 나온 화장실처럼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옆에선 때묻은 강아지가 땅바닥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을, ‘짐짝’ 놓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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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안에 짐짝처럼 놓여 있는 저 집은 충남 논산 한 농장의 이주노동자 기숙사입니다. 엉킨 노끈, 손수레, 녹슨 의자, 종이박스 등 잡동사니가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네요. 이주노동자들은 ‘창고’ 같은 곳에서 ‘화물’처럼 ‘보관’됩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사업장 약 500곳의 노동자 약 3800여명을 대상으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를 해봤더니, 이주노동자 70%가 가건물 숙소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영섭 민주노총 미조직전략국장은 “고용노동부가 하우스 내부 가건물 숙소를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농·축산업 사용주들의 반발이 크다”며 “싼값에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며 이득을 취했으면서 숙소 등 기본적인 인권 문제에 대한 책임은 피해가려고 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여기서 씻어야 한다면, 씻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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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농장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 숙소의 샤워실입니다. 체불임금 건으로 이곳을 찾았던 김용철 대구 성서공단노조 상담소장은 건물 뒤편에 딸린 이 샤워실을 보고 놀라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땀범벅이 된 이주노동자들이 몸을 씻을 공간은 합판으로 만든 저 좁은 ‘칸’뿐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끌어온 샤워기 하나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곳엔 거울도, 전등도, 잠금장치도 없습니다. 김 소장은 “눈가림하듯 합판만 세워놓고 샤워꼭지 하나만 달아놓았다”며 “피난처와 다를 게 뭐냐”고 했습니다.

■하마터면…화재 위험에 매일 가슴 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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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가건물이 대부분인 이주노동자 숙소는 화재에 특히 취약합니다. 지난 3월 광주의 한 장미농장 기숙사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주노동자 13명이 살던 숙소가 전소됐습니다. ‘펑’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대피한 덕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불길은 비닐로 만든 벽과 지붕을 따라 순식간에 번져나갔습니다. 화재 후 이곳을 찾은 김순임 광주민중의집 사무국장은 “현장을 보니 화재 당시가 상상이 돼 끔찍했다”며 “만약 이주노동자들이 못 나왔으면 어떻게 됐을지 떠올리니 무섭다”고 했습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아래층 컨테이너가 위험천만했던 그날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숙박시설 제공 여부: [V]제공 [ ]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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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제공’ 칸에 V자를 쓴 대가는 월 25만원입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떼어가기엔 너무 큰 액수입니다. “숙박시설의 유형: [ ]아파트, [ ]단독주택, [ ]연립·다세대주택, [V]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 V자가 체크된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이란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였습니다. 서류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주노동자 거주권의 현주소입니다. 숙박시설을 제공하면 임금을 공제해 주는 정부의 지침 이후 열악한 숙소를 주고 숙박비를 최대치로 공제하는 사업주가 늘었다고 합니다.

■사생활 없고 성범죄 위험…여성 이주노동자 ‘이중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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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주노동자 2명이 지내던 경남 밀양의 한 농장 기숙사입니다. 숙소에 잠금장치가 없어서 노동자들은 철막대기로 간이 잠금장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집 아닌 집’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불안한 신분을 빌미 삼아 여성 이주노동자를 성폭행하는 농장주들도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을 겪어도 심각한 피해가 아니라면 묻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를 당했을 때 한국의 법에 의해서 보호받기도 어렵고, 사업장을 당장 옮길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없다. 구조가 사실상 범죄를 유도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뱀 나오고 비 새도 사장님은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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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를 깔고 그 위에 다시 장판을 깔아도 빗물에 바닥이 흠뻑 젖었습니다. 경기 파주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 숙소인데요. 2~3명이 지내는 컨테이너 숙소는 비가 오는 날이면 저렇게 빗물이 샜다고 합니다. 항의 차원에서 현장을 방문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에게 관리자는 “괜찮다, (법적으로)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라이 위원장은 “부엌에 뱀까지 나오고 바퀴벌레도 많아서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노동자들은 이런 기숙사를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도 못한다. 사장도 나쁘지만 (사업장 변경이 어려운)제도가 가장 나쁘다”고 했습니다.

※더 많은 사진과 사연은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전’ 온라인 전시공간(http://ijunodong.org/hous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전시는 오는 28일 서울 상암 SBS 프리즘타워 앞, 5월12일 동대문 DDP 서편 광장, 5월26일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사진 제공: 지구인의 정류장, 이주노조 (MTU), 성서공단노조,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노동희망센터, 정치하는엄마들,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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