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민식이법 놀이’는 어른들이 하고 있다❞

프로젝트

 

민식이법은 ‘한 치 죄가 없는 선량한 일반 운전자도 최소 3년 콩밥을 먹게 만드는’ 최고의 악법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법정에서 민식이법이 적용된 양상은 이 주장과 많이 다르다.

 

ⓒ한성원 그림

지난해 5월 스마트폰 앱마켓에 모바일 게임 하나가 출시됐다. 제목은 ‘스쿨존을 뚫어라-민식이법은 무서워’. 어린이보호구역을 운전하며 어린이들을 피하는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아이들은 ‘킬킬’ 소리를 내며 운전자를 위협하는 고난도 장애물이다. 친구와 걷는 아이, 자전거를 탄 아이, 동전을 줍는 아이, 공을 들고 뛰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이 빠른 속도로 차를 향해 돌진해온다. 손가락으로 자동차 좌우 방향을 조작하다가 차로 아이를 치면 게임이 종료된다. 운전자가 경찰에 잡혀가고 자동차가 찌그러진다.

 

게임은 출시 당시 고인을 희화화했다는 논란 뒤 잠시 삭제됐다가 일부 장면만 수정돼 보름 만에 다시 업로드됐다. 지난 9월 말까지 1만 회 이상 다운로드된 이 게임의 평점은 5점 만점에 4.8점. 2500여 개에 달하는 사용자 리뷰도 호평 일색이다. “실제 상황과 매우 유사한 게임” “본인의 과실이 없어도 과실로 만들어 즉각 실형을 때리는 현실까지 반영돼 있다” “운전자들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애들이 일부러 와서 박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실 반영 쩐다” 등등.

심지어 일부 이용자들은 ‘반인륜’ ‘패륜’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민식이법 짜증났는데 게임으로나마 마음껏 으깨니 기분이 딱 좋네요” “죽이면 피 터지고 사지 찢기게 19금으로 수정해주세요” “애들 일부러 치어 죽이면서 스트레스 푸는 중” “내장 터지는 것도 표현해주세요” 등등.

 

지난해 5월 출시된 ‘스쿨존을 뚫어라-민식이법은 무서워’ 모바일 게임과 사용자의 리뷰 글. 평점이 높고 호평 일색이다.

 

 


‘민식이법 놀이’ 하는 건 어른들

 

어린이보호구역과 민식이법을 둘러싸고 대한민국에는 어린이를 향한 혐오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다. 실제로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커뮤니티, 그곳에 달린 댓글들 속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당할 뻔한 길 위의 어린이는 ‘초라니’ ‘시한폭탄’ ‘자폭맨’ ‘도로 위 흉기’로 불린다.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는 ‘보험금을 노리는 사기단’으로 조롱받는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고 예방책과 처벌을 강화하자는 호소는 ‘떼법’ ‘감성팔이’ 따위로 폄훼된다. 보험사와 법률사무소는 ‘민식이법 공포’를 팔아 고객을 유치하고, 언론사들은 자극적인 어뷰징 기사로 클릭 수 경쟁을 벌인다. 이곳에서 어린이는 더 이상 나라의 보배나 미래의 희망이 아니다. ‘내’ 차의 속도를 방해하고 ‘나’를 감방으로 넣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가해자다.

자신을 길 위의 피해자로 인식하는 성인 운전자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고의성을 지녔거나 돌출적으로 튀어나오는 아이가 차에 부딪치는 순간 ‘인생이 망한다’는 것이다. 근거는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어뷰징 기사 등에 떠돌아다니는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과 캡처 사진들이다. ‘민식이법 적용으로 교사직 잘림’ ‘민식이법 놀이로 용돈벌이’ ‘민식이법 자해공갈 보험사기’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수십만 번씩 재생되면서 퍼진다.

유튜브 영상 속의 ‘교사직에서 잘렸다’는 사례는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인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아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낸 이후 피해 학생 부모와 갈등을 겪다가 심적 부담으로 스스로 해당 학교 일을 그만뒀다는 내용이다. ‘민식이법 놀이’란 표현은, 아이들이 해당 법률로 위축된 운전자들의 심리를 악용해서 스쿨존으로 들어온 차량을 대상으로 장난치거나 심지어 ‘일부러 부딪쳐 용돈을 번다(자해공갈)’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의 근거인 동영상을 실제로 보면, 어린이들이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은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거나(물론 운전자 입장에서 볼 때), 자동차를 만났을 때 우물쭈물하며 미숙하게 대처하는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사실은 어린이들이 ‘민식이법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각종 동영상과 댓글, 네이버 지식인 짜깁기 등으로 길 위의 어린이들을 유희와 증오의 대상으로 삼으며 즐기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민식이법 놀이’라는 표현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사회적 의제로 등극시켰다. 아무리 선량한 운전자라도 “(피해자 사망 시) 무조건 징역 3년!” “(상해 시) 무조건 벌금 500만원!” “강간범에 맞먹는 형량!” 등을 피할 수 없다는 일부 유튜버들의 주장이 그대로 기사 제목이 되고 대중의 상식이 되었다. 급기야 학교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민식이법 놀이 금지’라는 제목의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에 ‘민식이법 놀이’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며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스쿨존은 ‘운전자가 아이에게 치여서’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공포존이 되었다. 민식이법은 ‘한 치 죄가 없는 선량한 일반 운전자도 최소 3년 콩밥을 먹게 만드는’ 최고의 악법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법정에서 민식이법이 적용된 양상은 유튜버들의 주장과 많이 다르다. 지난해 10월20일 전주지법 제11형사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상, 이른바 ‘민식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57)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4월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10세 어린이를 들이받아 발목 골절 등 전치 8주의 부상을 입혔다. 재판부는 아이가 차량 블랙박스에 나타난 시점부터 충돌 때까지 걸린 시간이 0.7초에 불과한 점을 들어 “스쿨존이라는 이유만으로 운전자가 어린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나올 것까지 예상하면서 제한속도보다 느리게 운전해야 한다거나, 시야가 제한된 장소마다 일시정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피고인 측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2월26일 대전시 유성구 한 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7세 어린이를 자동차로 치어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힌 B씨(61)도 지난 6월23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12부 재판부 역시 블랙박스 영상에 아이가 나타난 시점과 충돌 시점 간격이 0.5~0.6초로 짧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시간이 운전자가 위험을 인지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실제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는 ‘공주시간(통상 0.7~1초)’보다 짧기 때문에 운전자가 주의 의무를 다했더라도 사고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사고 당시 스쿨존 도로 양쪽에는 자동차들이 빽빽이 불법주차돼 있었다.

 


1년간 실형 선고는 단 한 건

 

스쿨존 내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쳤다. 오토바이 운전자 C씨(48)는 지난해 12월9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스쿨존에서 9세 어린이를 치어 머리를 다치게 했다. 피해자는 보행자 초록불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재판부는 스쿨존 내에서 신호를 위반하다 사고를 낸 피고인의 죄가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는 못했지만 보험을 통해 치료비가 지급된 점 등을 고려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8월19일 인천시 계양구 한 스쿨존의 무신호등 횡단보도에서 10세 어린이와 그의 어머니를 치어 다치게 한 운전자 D씨(34)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한 점, 차량이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 그에 따른 처리가 이뤄진 점” 등이 감형의 근거가 됐다. 지난해 8월 경기도 광주시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SUV 운전자 E씨(25)가 자전거를 타고 가던 6세 어린이를 들이받아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해당 장소의 어린이보호구역 안내표지가 부실해서 운전자가 스쿨존인지 알 수 없었다”라는 이유였다.

지난 3월26일에는 운전자 F씨(30)가 서울 양천구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제한속도를 넘은 시속 35㎞로 신호까지 무시하며 달리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7세 어린이 두 명을 치어 상해를 입혔다. 하지만 벌금 500만원 형을 받는 데 그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

 

대한민국에는 어린이보호구역과 ‘민식이법’을 둘러싸고 어린이를 향한 혐오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다.ⓒ시사IN 이명익

 

아이가 사망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21일 전주시 반월동 한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2세 유아가 운전자 G씨(54)가 운전하던 차량에 치여 숨졌다. G씨는 스쿨존 도로에서 불법유턴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이 사고는 발생 당시 ‘민식이법 시행 후 첫 스쿨존 내 사망사고’로 알려지며 이목이 쏠렸다.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민식이법에 따라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가 얼마만큼의 형량을 받을지 추측이 분분했다.

1년2개월 뒤, 운전자는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사고지점이 어린이보호구역이 아니었고 그렇다 하더라도 인식할 수 없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을 기각하면서도 “사죄하고 반성하는 태도, 전과가 없고 유족과 합의해 유족이 처벌을 바라지 않는 점 등을 참작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민식이법이 있어도,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아이가 다치거나 죽어도 운전자들은 여러 면책조항을 통해 가중처벌을 충분히 피해갈 수 있었다.

지난 3월31일 대검찰청에서 발행하는 〈형사법의 신동향〉 통권 제70호에 ‘특가법 어린이보호구역 치사상에 관한 판결 분석과 교통조사 실무대응’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지난해 3월25일부터 1년 동안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13에 규정된 어린이보호구역 치사상 가중처벌(이른바 ‘민식이법’)이 적용된 하급심 판결 25건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14건이 집행유예형, 10건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단 한 건. 무면허 상태의 H씨(40)가 의무보험도 가입돼 있지 않은 차량을 시속 40㎞로 운전하다가 횡단보도 위에서 7세 어린이를 다치게 한 뒤 동승자와 짜고 운전 사실을 은폐하려 시도한 사건이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무면허, 과속, 운전자 바꿔치기 범죄를 저지른 운전자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운전자들이 그토록 공포에 떨던 민식이법 형량의 최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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